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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자는 춘추전국시대에 중국의 송에서 탄생한 철학가입니다. 전국시대에 

제자백과 가운데 묵가를 대표하는 위인이기도 합니다. 

1. 출신 및 생애 

 묵자의 묵이란 검다는 뜻입니다. 묵의 해석은 두 가지로 되는데요, 첫째는 묵자의 

살성이 검은색이었다는 것, 두번째는 묵자가 받은 형벌인 묵형을 말합니다. 

 살이 검다는것을 해석해 보면 살갗이 햇볕에 탔다고 볼 수 있는데, 이것을 비추어 보았을 때

묵자는 직접 노동하게 되는 농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묵형을 받았더라도 

묵형을 받은 범죄자들은 하층민 신분이었거나 하층민으로 전락해 살아갔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이를 통해 묵자가 했던 주장인 통치자도 백성과 같이 검소하게 살아야 한다는 부분이 맞아 

떨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 생애에 대한 주장 

 많은 역사가들이 묵자가 겨우 관직에 올랐던 하급의 장인 계급이라고 믿었습니다. 

 또한 묵자의 부모는 그에게 다정하지 않았고, 사랑으로 키우지는 않닸다고 알려져 있기도 

합니다. 묵자는 송지방에서 잠시동안 관직을 하였지만, 그는 루지역의 사람이었습니다. 

 묵자 역시 공자처럼 전국시데에 통치국에서 관리의 위치가 되고 싶었던 사람들을 위해 

운영한 학교를 유지하였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2) 목수 묵자 

 묵자는 기계를 만드는 데에 탁월한 능력이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성곽을 에워쌀 수 있는 

구름사다리의 설계를 통해 바퀴가 달리면서 이동할 수 있는 다양한 것을 만들었습니다. 

 묵자는 높은 관직까지 오르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방어시설에 대하여 전문기술을 가지게 

되었고, 많은 통치자들이 그를 찾게 되었습니다. 

 3) 철학자 묵자

 묵자는 초년기 때 유교를 배웠습니다. 하지만 유교는 너무 운명론적이고, 장례와 축하에만 

공을 들이기에 서민들의 생산성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보았습니다. 이러한 이론을 바탕으로 

그는 일생동안 공자와 겨룰 수 있을 만큼의 많은 추종자를 모았습니다. 

 그의 추종자들은 대부분 기술자들과 장인들이었습니다. 그 사이에서 묵자는 개인적인 이득과 

죽음과는 관계없이 그가 가진 열정이 사람들의 선을 위하여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2. 묵자의 사상

 1) 겸애

 묵자는 사랑이 부족하기에 세상이 혼란스럽다고 주장하며 사람들이 평등을 가지고 서로 사랑하며 

다른 사람에게 이롭게 하다 보면 하늘이 가진 뜻과 일치하게 된다는 뜻의 겸애를 주장하였습니다. 

 겸애를 실행하는 방법으로 빈부의 격차가 없는 경제상의 평등을 강조하였고 검소하게 생활하면서 

예약을 가볍게 생각하라고 주장하였습니다. 정치설로는 같은 뜻의 비전론이 있습니다. 

 겸애사상은 유가의 인, 불가가 가진 자비와도 유사하고, 귀신의 존재에 대해 인정하고 있는

종교상의 색채는 민간의 신앙을 계승한 것으로 보였다. 

 신분이나 관등, 직책의 상하관계에 대해 서열을 존중하였고 예절과 전통을 숭상하고 있는 

유가와도 상대하였습니다. 하지만 겸애의 개념들은 기득권들의 정치적 이유 때문에 철학적으로 

발전하지는 못하였습니다. 

 2) 존비친소의 비판

 묵자의 사상은 존비친소의 규범에 어느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부분에서는 모두 

반대되지는 않았습니다. 또한 공자의 철학과도 통하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묵자는 존비친소의 사랑에 비판하였으며, 다른 사람들의 가족 또한 본인의 가족을 대하듯이 

하라고 주장하는 겸애가 있었습니다. 이러한 겸애사상은 아비도 몰라보는 집단이라는 단어로 

비난받기도 했습니다. 묵자는 유교가 가진 허례허식이 백성들에게 이익을 저해하게 된다고 

판단하였고, 이를 통해 유교를 비판하기도 하였습니다. 

 3) 등용

 묵자의 사상을 보게 되면 상현은 유가가 가진 주장을 반박하였고 관리의 임용은 신분과 

직업에 구애받지 않고 문호를 개방하며 이로 많은 이를 등용하라고 말하였습니다. 

 묵자가 가진 겸애는 타국과 자국등의 차별을 없앴고 사람은 서로 널리 사랑하라는 설입니다. 

 이 사상은 묵자가 가진 사상의 결정체이고 공자가 통치자의 처지에서 백성을 이롭게 해야 

한다는 주장에서 일정 부분 통하였습니다. 

 비공은 전쟁이 불의하며 백성들을 해친다고 주장하였으며, 현대의 평화주의 이론과

공통점도 있습니다. 절용과 절창은 군주들이 가진 의례적인 사치에도 맞서는 것입니다. 

 

 

  3. "묵자"의 내용

 저서 "묵자"의 내용은 다섯 부분으로 나뉜다. 

 1) 친사부터 삼변까지의 7편을 말한다(묵가의 잡론집)

 2) 상현부터 비명까지의 23편을 말하며 묵가의 주요 사상이다.(이 책의 핵심)

 3) 경, 경설, 대취, 소취의 6편이며 이것은 표현의 논리와 말의 개념을 분석한 것이다. 

 4) 경주부터 공수까지의 5편을 말하며 개조묵자의 언행과 사저집으로서 공자를 논란한 

 비유편도 이곳에 들어있다. 

 5) 비성문이하에 11편이며 이것들은 묵자의 방어전술을 적은 것이다.

 

 이것들 중에서도 3번의 류는 묵변이라고도 호칭됩니다. 광학과 역학, 기하학 등의 명제도 

포함하고 있는 중국고대가 가진 논리학의 일부분입니다. 또한 류는 성의 방어전술에 필요한 

기구와 설비, 자재의 제작 등을 만드는 법을 논한 부분입니다. 이것들은 묵자의 집단이 가진 

특성을 그대로 전한 것이기도 합니다. 

 천지는 하늘이 뜻하는 것으로 인간사회의 정의가 되고, 모든 사람들이 따라야 할 규범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상동은 나라가 가진 상하가 일치하여야 하며, 천자가 행하고자 하는 것이 

하늘이 가진 뜻과 부합하여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비공은 전쟁이 불의하며 백성에게 하는 해로움을 주장하였고, 절창은 군주가 가진 의례적인 

사치에 반대한 것입니다. 명기는 사람이 가진 사후의 영혼이 있는 실재를 강조하였고, 

그 상벌을 두려워하게 한다고 말하였습니다. 

 이것들은 상, 중, 하의 10론이 있었으나 일부가 분실되었고 현재는 23편이 남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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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로 너무 유명한 소크라테스의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소크라테스는 고대 아테네에서 태어나 일생동안 철학과 그에 관련된 토론으로 

일관하여 서양의 철학과 관련된 첫 번째의 인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1. 소크라테스 생애 

 소크라테스는 조각가였던 아버지와 산파였던 어머니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성장초기에 아버지의 일을 도우며 석공기술을 배웠고, 천문학, 철학, 기하학 등도 함께 

공부하였습니다. 40세까지는 세번에 걸쳤던 전쟁에 직접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자연의 철학을 배웠습니다. 하지만 그런 기계적인 세계관에 불만을 품기도 했는데요. 

 아테네는 몰락기였고, 보수적이면서 귀족적이고 비판적인 정신시계가 가득한 시대였습니다. 

 이런 시대에서 객관적이면서 타당한 목적이 있는 철학을 수립하려고 노력했습니다. 

 

 2. 소크라테스의 사상 

 1) 영혼중심적 사고 

 소크라테스는 영혼과 육체의 이원론자였습니다. 육체는 객관적으로는 존재하고 있지만

그냥 껍데기일 뿐이며 지식은 영혼 안에 내재되어 있는 개념이라고 보았습니다. 또한 영혼은

불멸하기에 인간은 영혼을 소유했다 하더라도 진리를 통찰하는 데에는 방해당한다고 판단

하였습니다.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 이성적인 사고로 기초했던 산파술로 여러 가지 오류를 

잡을 수 있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이런 신념들에 기초하여 죽음에 대한 정의를 영혼이 

육체에서 사라지는 것으로 보고 죽음이라는 단어를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2) 도덕론

 소크라시대가 생존했던 시대에서는 전반적으로 아테네의 민주주의가 부패했던 때였고, 

이 때문에 개인적인 윤리의 타락이 극심하였던 시대였습니다. 그는 여러 가지 악덕은 무지에서

비롯한 것이라고 판단하였습니다. 또한 덕은 이성적인 사고에서 생겨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이성이 가진 부덕함이라는 개념 그 자체를 비판하였습니다. 악덕한 자들은 지식이 부족한 상태라고 

보았고, 이런 의미가운데에서 냉소적인 이성은 성립할 수 없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이러한 그의 지행합일론은 그가 도덕적, 윤리적인 측면을 강조하게 하는데 한몫을 하였습니다.

 일상생활에서도 그는 절제를 추구하였고, 자식의 도움이 필요한 청년들을 무료로 가르치기도 

하였습니다. 그는 선을 중시하였고 그리하여 토론과정에서도 그와 관련된 많은 질문을 

남겼습니다. 이런 관점들은 스토아학파에 의하여 그의 사후에 계승되었습니다. 

 3) 질문방법

 소크라테스는 구두의 언어 형식으로 질문을 던지는 그 자체에 의미를 두었습니다. 

 그의 구두언어는 지의 매개 정신으로 다른 사람에게 전하는 언어의 운송수단으로 보았습니다.

 그에게 구두언어란 현대적 관점에서 보고 있는 단순한 규칙이 있는 음파의 개념이 아니었습니다. 

 또한 발화자의 사유를 어떤 오류도 없이 내보내고, 듣는 사람의 사유에 영향을 주게 되는 

절대적인 것으로 보고 있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다양한 사람과 토론하고 있었는데 제자들이 

그에게 질문을 던지면 즉각적으로 답을 주지 않고 거꾸로 다시 질문을 던지곤 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가진 질문에 확신할 수 없는 것이 있다면 그에 대해 끝없이 질문하였고 

이러한 과정을 통해 진리에 다가갈 수 있도록 노력하였습니다. 

 4) 변론과 크리톤

 소크라테스는 "변론"에서 법정에서 철학을 포기하게 된다면 석방을 해준다는 제안을 받더라도

본인이 철학을 하게 되는 이유에 대하여 하늘이 내린 명령이기에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말하였다. 

 이 외에도 소크라테스는 그 이상의 철학적인 원칙과 신념에 기초하였고 그를 통해 의사결정을 

한 여러 가지 사례를 가지고 있습니다. "크리톤"에서 소크라테스는 본인에게 독배를 내렸던 

법률을 보고 본인의 국외추방을 제의하지 않았고, 소극적 절차적 정당성에 대해 뒤늦게 훼손할 

수는 없다며 크리톤에게 말한 바 있습니다. 크리톤에서 소크라테스는 평소에 가진 이성적인

논법을 구사하지 않았고, 정서적이며 감성적인 모습으로 설득하고 있었으며 이러한 것을 모두 

파악하기에는 힘든 책이라는 지적을 받기도 했습니다. 

 

3. 산파술

 소크라테스는 아무런 저서도 남기지 않았기에 확실하게 사상을 알기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플라톤의 저서에서 언급한 것을 보면 "만인 중에 가장 현명한 사람은 소크라테스이다" 

라고 말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스스로 무지하다는 것을 자처했던 소크라테스는 신이 한 신탁에 대해 사실인지 확인하고 싶었고

여러 군데에 현명한 사람들을 찾아다녔습니다. 

또한 제논의 변증법을 활용하였고, 잘못된 판단들의 모순을 받아들이고 옳게 하는 판단으로 

유도하였는데 이것을 바로 산파술이라고 합니다. 그는 합리주의자였고, 초경험적으로 가지고 있는

다이몬의 소리 또한 경청하였습니다. 

 소크라테스는 덕이 인간에게 내재하고 있다고 믿었고, 사람들에게 이것을 깨닫게 하기 위해 

많은 계층의 사람들에게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를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무지함을 깨닫게 

해주었고 윤리상의 개념을 알게 하기 위해 설교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 때문에 젊은이들을 타락하게 되고 신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의견 때문에

고발을 당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사약을 마시게 되었습니다. 

 탁월한 지적능력과 도덕적인 성격으로 철학자들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을 감화시켰기에 

인류의 최대 교사로 불리고 있습니다. 

  소크라테스의 철학을 본받은 많은 후배들을 양성하였고 오늘날까지도 많은 철학자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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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의 사상이나 철학은 현대인들에게 많은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오늘은 맹자의 생애와 사상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1. 생애 

 맹자의 생애연대는 정확하게는 밝혀지지는 않았습니다. 맹자는 공자가 죽고 난 후 100년 정도 

후에 추나라인 산둥성지역에서 태어났다고 알려져있습니다. 맹자는 원래는 노나라의 서장자 경보

후손이었는데요, 경보 아들인 오에 다다르자 가문을 새로이 세웠습니다. 

 이때 가문이 맹, 맹손, 중손씨로 불리었습니다. 

 기원전 408년에 제나라가 성성을 공격했습니다. 성성은 맹 씨 가문의 식읍이었는데, 이로 인해

맹 씨의 일가들은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그중 일부는 추나라로 흘러가게 되었습니다. 

 이런 사유로 맹자는 추나라에서 태어나게 된 것입니다. 

 

 2. 맹자의 활약 시기

  맹자가 주로 활약한 시기는 기원전 4세기를 기준으로 그 전반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맹자의 어머니인 금씨는 맹모삼천지교로 유명합니다. 맹자를 훌륭하게 키우는 것 때문에 

 세 번이나 이사를 하였다고 하는데요. 이 사실이 전한 시기에 활동했던 학자인 유향이 지은 

열녀전이라는 곳에 등장하면서 유명해졌습니다. 

  맹자는 공자의 고향이었던 노나라로 이동하여 공자의 손자였던 자사를 통해 육경을 

배웠습니다. 공자의 경우에서는 두드러지지 않았지만 천의 관념에 대해 발전하고 있는 

자사의 계통이었습니다. 

 맹자는 양주와 묵자의 사상과 경쟁하며 유가사상을 확립하였습니다. 이때는 제자백가 

시대였는데, 40세 이후에는 왕도정치와 인정을 주장하였습니다. 종횡가와 법가가 득세하고 있는

세상과는 타협하지 않았다고 알려집니다. 은퇴 후인 60세 이후에는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제나라에 체류했을 때가 있었는데, 그때 인접 국가였던 연나라에서 

 자지가 난을 일으켰고 그 사실을 제선왕에게 보고하였습니다. 그로 인해 자지의 난을 

 제압하기도 했습니다. 

 

  3. 맹자의 사상 

   1) 저서 맹자 

    저서로 맹자를 저술하였습니다. 맹자 중 7편은 만년의 저술이라고도 합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이는 의문이며, 그의 제자들이 이것을 편찬하였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맹자의 사상의 하나는 

하늘애 대한 숭경, 그 정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늘은 인간을 포함하여 만물 모두를 낳았고, 

그것의 피조물이 지배하게 되는 영원불변의 법칙을 가지고 만물을 창조하는 목적을 가졌다고 

파악하고 있습니다. 또한 하늘과 관련하여 인간본연이 가지고 있는 모습에 대해 고찰하고 

있습니다. 피조물인 인간은 하늘이 가진 법칙성이 내재하고 있고, 하늘이 정한 법칙을 달성하는 것이 

 인간이 가진 목적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맹자의 인간관입니다. 

  2) 성선설

 공자는 인과 예를 실천하고 있는 인간이 가진 주체성에서 덕성을 발견하였고, 맹자는 인간이

가진 하늘이 주는 목적에 대해 그것을 지닌 법칙성이라고 행각 하였습니다. 이를 인간이 가진 

본성이라 하였는데, 인간이 가진 본성은 근본적으로 선하다는 성선설을 주장하였습니다. 

 맹자는 전통적 유산인 인간이 가진 지각을 초월한 참된 실재자에 대한 숭경으로 인간이 가진 

실천적인 계기를 통해 종교적인 기초를 닦았습니다. 

 3) 사덕

 맹자는 인간은 근본적으로 선하다는 성선설을 증명하기 위하여 인간의 마음속에 인, 의, 예, 지의 

사덕이 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인은 측은한 마음, 다른 사람의 힘든 처지를 그냥 넘기지 못하는 

마음이고 의는 불의불선을 부끄럽게 생각하고 증오하는 마음입니다. 예는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는 

사양의 마음을 뜻하며, 지는 옭고 그름에 대해 판단할 수 있는 시비의 마음으로 설명합니다. 

 4) 인의 세분화

 공자는 예를 실천하고 있는 인간의 주체성에 대하여 인이라고 하였습니다. 사단이란 공자가 

말하고 있는 인의 세분화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맹자는 인이란 사람이 가지고 있는 덕이라 

하였고, 특히 위정자에 의해 실현해야 한다고 강조하였습니다. 공자의 사고방식에 대해 이를 

계승하고 있는 부분도 있습니다. 

 5) 오륜설

 덕목을 정리한다는 뜻에 사단설 이외에도 오륜설이 유명합니다. 오륜설은 인간관계를 정리할 때 

다섯으로 하는 것을 말하는데, 부자유친, 부부유별, 군신유의, 장유유서, 붕우유신이 바로 그것입니다. 

 맹자는 공자자 가진 덕치주의 사상에 대해 하늘이 만민을 낳았고 그 통치자가 유덕자를 

천자로 명한다고 하는 서경 이후에 천명관으로 이를 뒷받침하였습니다. 하늘이 신앙을 통해서 

정치권력이 가진 정통성에 기초를 준다는 사상입니다. 그리고 하늘이 가진 의지는 민의 소리와 

천지의 승인으로서 알 수 있다는 민본주의의 요소도 부가되었습니다. 

 맹자는 농사에 방해가 되는 전쟁과 노역을 하지 않았고, 민생이 안정해야 된다는 주장을 하였습니다. 

 또한 도덕교육을 행하였고 이를 통해 인륜의 길을 가르쳤습니다. 천하에 있는 사람들은 기뻐하였고

심복하고 귀일 하다는 뜻의 성왕정치, 인정과 왕도라고 말하였습니다. 

 이 주장이 바로 맹자의 왕도론입니다. 또한 서경에서 강조하고 있는 은. 주 교체기에 있는 역성혁명

사상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맹자는 정치적인 원리로써 하늘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은 공자보다는 

이 부분에서 앞서고 있습니다. 맹자는 주나라의 제후국 노나라의 출신으로서 은 주 교체기를 보는 

그의 관점은 주나라에 대한 건국의 당위성을 확고하게 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민의에 대해 배반하며 인의에 대해 어긋났다고 해석했는데 이부분 역시 매우 주관적인 

부분입니다. 왕이 부도덕하면서 게으르다고 생각하여 여러 신하들에게 쿠데타를 일으킬 수 있는 

명분의 논리라 볼 수 있고 맹자 본인이 주장하였던 군신유의의 법칙에 위배되기도 합니다. 

 맹자의 논리를 본다면 주공단의 명분이 없이 은나라의 후예의 무경에게 주나라가 망했어야지 

정의로운 것이라 여기며 역성혁명의 실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역성혁명의 사상은 쿠테타를 일으킨 세력에게는 자기 합리화의 길을 열어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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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는 춘추시대에 초나라의 철학자입니다. 후세에 대단한 철학자로 알려진 노자의 

철학사상으로 인문학 이야기 시작해 봅니다. 

 

 

1. 노자의 생애 

 노자는 허난정의 사람으로 춘추시대의 말기에는 주나라의 관리였고, 그 후에는 관직을 버렸습니다. 

 노자는 중국에서 우주가 가진 만물을 최초로 생각한 사람으로, 그가 발견했던 우주의 진리는 

 " 도 "라고 불리었습니다. 도를 중심으로 생긴 신앙을 도교라고 합니다. 노자는 우주의 만물이 이루어지는 

이치가 근본적으로 "도"라고 설명하였습니다. 

  1) 도교

    도교는 관념이 조금 희박하고, 시대의 복을 추구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종교가 가진 특성상 

   이론을 보충해야 할 필요성이 생기고 그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도록 도가의 논리가 받아들여지게 

   되었습니다. 이를통해 도교와 도가사상은 관계성이 가까워졌습니다. 도교는 종교와 사상, 풍속등의 

   원리를 편하게 흡수하였고, 조절할 수 있는 특별한 성격을 가지고 성장해 왔습니다. 

  2) 도가사상 

   도가사상은 도교가 조절하게 된 사상의 하나일 뿐이지, 원래부터 도교와 도가사상이 같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도가사상은 도교가 논리를 받아들일 후에도 예술, 사상등의 방면에서 우수하게 작용하며 

  독자적인 전개가 펼쳐젔습니다. 현대 우리나라에서도 도교와 도가사상은 별개라는 연구가 

  수용되었습니다. 

 

  2. 노자의 사상 

   1)기본사상 

    도는 모양이나 성질이 없고, 없어지거나 변하지도 않으며, 어디에서나 항상 존재한다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는 형태의 만물들은 "도"가 밖으로 보이는 모습에만 지나지 않는다고

    강조하였습니다.

   2)도덕경

    노자의 사상은 도덕경 속에서 무위자연이라는 단어로 나타낼 수 있습니다. 

    사람은 우주 속에서 근본이며, 진리의 하나인 도의 길로 도달하기 위해서는 자연 안에 있는 법칙에 

   수용하며 살아야 한다는 무위자연 사상을 펼쳤습니다. 사람들은 문화와 풍속, 법률 등 인위적인 것들에 

   얽매여서는 안 되며 사람이 가진 가장 순수한 양심에 따르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이며 살아갈 때 

   비로소 도에 충족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사상 때문에 후세에는 도교의 시조로 불리었고, 노장사상은 도가사상으로 발전하였습니다. 

   이는 유교와 더불어 중국의 정신 사상에 큰 의미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3. 노자의 인생관

   노자의 인생관은 "유약한자는 생의 도이다". 유약은 강가에 승한다.  천하의 유약하기는 물보다 더한 것이 없다. 

   상선은 물과 같아서 물은 흘러 이롭게 하고 다투지 않는다. 뭇사람들이 싫어하는 곳에 처한다. 그렇기에 

   도에 가깝다는 인생관을 펼쳤다. 위 내용에서도 보이듯이 나를 내세우지 않으며 세상의 흐름에 따라 

   함께 하는 일을 권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상을 겸하부쟁이라 일컫는다는 말을 하고 있다. 

    노자의 철학은 도의 본질, 현상계에서 생활하는 철학이다. 도는 만물을 생장시키는 반면, 자신의 소유로

   하지는 않는다. 또 만물을 형성시키고 있지만, 그 공을 내세우지도 않는다. 만물을 성장시키면서도 

   주재하지는 않는다. 등과 같은 사고의 말을 하였으며, 이러한 사고들은 만물의 형성과 변화가 

   원래 그렇게 되는 것이며 예정된 목적은 따로 없다는 생각에서 유래되었습니다. 

 

  4. 노자의 여담

   1) 일부의 학자들은 노자가 실제 인물이 아닌, 주나라의 왕실문서에 전해지고 있는 

   처세술모음집이라 주장하고 있다.

   2) 노자의 사상적인 계승자로는 장자와 열자가 있다. 다르다고 평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크게 확대하여 보면 많이 다른 점은 없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장자는 노사의 중요한 사상가운데 

  상대주의를 극대화하였다. 

   3) 사마천의 사기를 보면 공자가 노자에게 가르침을 청했다고 한다. 이때 노자는 위선자라는 

   단어로 공자를 비판했고, 공자는 노자를 범접할 수 없는 존재라고 칭송하였다. 한비자의 책을 보면 

   도가의 처세술에 대해 거론하면서, 유가의 고리타분한 내용을 비판하는 글도 보인다. 하지만 

   도가가 제자들에게 많은 영향을 안겼던 것은 사실이고, 그렇기에 이런 이야기들이 사실이라는 

   의견도 있다. 

   4) 도가가 서쪽방향으로 떠나 인도에 도착하여 펼쳤던 가르침들이 불교가 되었다는 말이 있다. 

    이 설은 노자화호설이라고 하는데, 불교가 중국 쪽에 들어왔던 시기에 이 설도 퍼졌다. 

    도교에서 도사들이 이를 두고 자신이 불교보다 더 높은 존재라는 근거로 삼았고, 불교에서는 

    이에 대응하기 위하여 청정법행경이라는 위경을 지었다. 공자는 유동보살의 환생이며, 노자는

    가섭보살의 환생이라는 주장을 하며 삼성화현설을 소리 높였다. 노자와 석가모니의 사상을 다르기에   

    의미 없는 주장이라는 평가도 있었다. 

     노자의 사상은 공수신퇴, 무위자연 등이 핵심이고 석가모니는 팔정도와 사성제가 핵심이었다. 

     불교의 공사상은 노자와 비슷하였는데, 공 사상은 인도에 있는 불교 고유 사상이었으므로 

     노자와 불교를 구분한다는 것은 의미가 없어 보인다는 해석이 있었다. 

    5) 노자는 도가도비상도명가명비상명 같은 말을 하였는데, 말장난 같아 보이는 이 말을 한 이유가 

    책값이 비싸서 말을 외우는 필요성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런 것들이 중국어가 가진 

    특성과 더해지고 그로 인해 효과가 높아졌다. 번역되었던 노자의 말이 아닌 원문을 보면 

    문학적으로 아름답게 보인다고 일컬어지고, 한국어로 해석할 때와는 느낌이 달라진다. 

    도덕경에서 진정한 노자의 말을 느껴볼 수가 있고, 이것을 제대로 해보고 싶은 이에게는 

    한문으로 낭송하는 것을 추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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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의 대표 철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 아리스토텔레스는 고대 철학자이면서 박식가입니다. 

플라톤의 제자로도 유명한데요. 다양한 주제로 책도 저술한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1. 아리스토텔레스의 생애 

 그리스의 북부에 위치한 스타게이라에서 출생하였습니다. 어린시절 궁전에서 자랐으나 

양친을 일찍 여의고 연고자가 후견인이 되었습니다. 기원전 367년에는 플라톤의 아카데메이아에 

입문하게 되었습니다. 플라톤이 사망하기전까지 20여년 동안을 그곳에서 학생의 지도, 연구에 매진

하였습니다. 그에게 이데아철학은 큰 영향을 주었는데요. 플라토니스트로서의 그에게는 이데아 비판이 

이어지면서도 완전하게 벗어나지는 못했습니다.  

  1)아카데미아기 

   기원전 360경부터 시작되었으며 메넥시너스, 향연, 철학에의 권유, 유디머스 등의 대화편과 기타의   

  글이 쓰여져 간행되었다. 자연학을 비롯한 연구도 시작되었고 토피카, 데아니마 등이 쓰여졌다. 

   2)편력기 

    플라톤이 죽기 직전의 아피스토텔레스는 헤르미아스의 초청을 받아 아타르뉴스로 갔다. 페르시아에 

  대항하며 강한 군대를 보유하고 있던 참주의 보호로 왕의 질려 피티아스와 결혼하였고 그곳과 가까운 

  아리스에 살면서 강의와 연구를 하였다. 이곳에서 에우데모스 윤리학, 자연학 등을 썼고 생물학의 연구가 

  발전되었다. 

   3)학두기 

   마케도니아의 총독의 원조로 김나시온을 빌려 학교를 세우게 되었다. 이 학교는 리케이온이라는 

  명칭으로 불리게 되었고, 이곳에서 12년동안 연구와 강의를 하였다. 소크라테스와 같은 길을 밟고 싶지

  않아 모친의 고향이었던 칼키스로 떠났고, 위장병으로 인해 63세에 생애를 마감하게 되었다. 

 

 2. 아리스토텔레스의 학문

  1) 윤리학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인 니코마코스 윤리학은 우리가 가진 도덕적인 행동의 습관화를 도덕적인

성품을 고양하는 것에 포인트를 두었다. 에우다이모니아인 좋은삶을 삶이 가져야 할 목표로 본다. 

 그러나 저스티스는 정의라는 단어에 대하여 그의 저서 윤리학 정의론에서 정의는 동전이 가진 

 양면처럼 평등이라는 단어와 밀접하게 관계가 있다고 말하고 있다. 

  2) 논리학 

 아리스토텔레서는 형식논리학의 위치를 가지게 되었으며 그가 만든 개념은 수리논리학에서의 발전 전인

서양논리학의 흐름으로 크게 자리 잡았다. 칸트는 저서 순수이성비판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이

연역추론이 가진 핵심을 모두 가지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에서 가장 유명한 부분은 삼단논법이다. 삼단논법이란 연역적 추론에 근거한

논증으로, 두가지의 전제로부터 결론을 끌어내는 방법을 이야기 한다. 

  3) 형이상학

  아리스토텔레스의 4원인론~그 이전의 학설을 모두 충분하지 못한것으로 밀었고, 스승인 플라톤

이데아론은 초월성을 가진 감각물의 해명에 소용이 없다고 거부하였다. 최고의 지혜는 인식하기 위해 

인식한다고 이야기 하며 제 1의 원인을 대상으로 하는 최고선을 알아야 하고, 자신을 위해 존재하는 

유일하고 신적인 것이 외경될 것이라고 말하였다. 모든것에 있어 원인은 한가지이며 제 1의 철학은 

동시에 신학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3. 사원인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연학에 네가지 원인을 들었다. 감각의 사물 연구인 자연학은 목적, 작용, 

형상 등에 다양한 원인을 가지고 있다. 

 1) 질료인 

 대상이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를 나타내고 있다. 탁자가 가진 재료는 나무이며, 차의 재료는 철과 

고무가 되는 것이다. 이것은 행동을 나타내는 용어가 아니고 어떤것이 다른것보다 우위에 있는것도 

아니다. 둘은 동등한 위치에 있는 것이라고 말하였다. 

 2) 형상인

 그 대상의 정의, 특성에 대해 결정되는 것을 말한다. 일반적인 법칙과 기초원리의 설명을 활용하는데 

인과관계에 필수적인 요소만을 언급할 수 있다. 인간이 만들 수 있는 물건과 그 물건이 생기기 이전에 

가지고 있는 청사진이 더욱 형식적인 원인이라고 말하고 있다. 

 3) 작용인 

 변화라는 것의 끝은 처음 시작되는 어떤것에 관한 것이다. 어떤것이 만들어지며 만들어지게 하는 

어떤 것은 살아가는 것인지 아닌지를 결정하고 변화에 대한 근거로 작용하게 만든다. 현대적인 

근거와 이해를 반영하고 있고, 특정한 요인이 근거가 되는것의 개념을 포괄하고 있다. 

 4) 목적인

 사물에 관한 목적을 말하는 것이며, 목적이란 목적성을 띄는것과 띄지않는것 모두를 포함하고 있다. 

대상이 원래 쓰이는 용도에 초점을 맞추었다. 책상이라는것은 잠을 자는 공간이 아닌 책을 읽고 

공부를 하기위한 용도라는 것이다. 이런 개념은 합리적, 윤리적과 같이 행동에 목적을 결합하는 

원인과 그에따른 현대 개념을 모두 나타내고 있다.

 

 4. 아리스토텔레스의 교육관

 이성적 생활에 목적을 두었다. 타인과의 접촉에서 이성에 의하여 모든 행동을 하도록 만드는 교육체계를 

만들었다. 인간은 사고와 행동을 이성적으로 할 수 있다고 모았고, 철학과 과학을 통한 훈련을 주장하기도

했다. 그 다음으로는 행복한 생활을 이루기 위해 교육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모든 인간의 최종목표는 

행복이고, 행복은 이성적인 행동에서 얻을 수 있는것이다. 교육은 이성을 통하여 덕을 지니게 하는 

행동을 하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교육을 통하여 생성하고 얻을수 있는 모든것을 가르지고 퍼지게 하는데에 

힘을 쏟았다. 그 결과 철학과 교육을 뗄 수 없는 분야로 연결시키는데 성공하여 유명한 철학자고 후세에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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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적으로 자연을 연구하는 학문인 자연과학. 

그 역사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1. 고대의 과학

 1)천문학과 역법 

고대문명에서는 천체를 관찰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달력을 제작하였습니다. 메소포타미아 

신화에 따르면 지혜의 여신인 이난나가 많은 사람들에게 시간을 재는 법을 가르쳤다고 합니다. 

바빌로니아에서는 시간을 재보기 위해 해시계의 한 종류인 그노몬을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고대의 이집트에서는 큰개자리 시리우스를 관찰하고 1년을 계산하였습니다. 시리우스가 해뜨기 

전에 동쪽하늘에 나타나는데 5월이되면 나일강이 범람하였습니다. 나일강은 고대 이집트의 농업에 

매우 중요한 부분이었기에 계절적인 계산이 매우 중요했는데요. 고대의 이집트인들은 1월을 30일로 

하였고 12개월을 1년으로 계산하였습니다. 이집트의 달력여는 윤년이 없기 때문에 시간이 점차 흐르고 

달력과 실제 계절이 차이를 보이게 되었습니다. 

 2)지도의 제작 

 고대에는 다양한 지도가 제작되었는데요. 바빌로니아에서 점토판에 그린 지도가 있었지만

본격적인 지도제작은 고대의 그리스시대에 이루어졌습니다. 아낙시만드로스는 서구에서 최초로 

지도를 제작한 사람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고대의 로마는 자신의 영토 안에서 도로를 표시한 

지도까지 제작하였습니다. 라인강까지 모든 위치와 주민들을 기록한 도로망을 표기하였습니다. 

 3) 생물학 

 고대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생물로 해부학 구조를 연구하고 생물학의 연구에 많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동물의 역사"와 같은 다양한 생물 저서를 남기기도 했습니다. 

 4) 역학과 건축 

 메소포타미아에서 피라미드와 같이 고대석고 건축이 사용되었습니다. 고대의 건축물들은 

동력이 사용되지 않았고 단순한 기계의 원리를 기초로 세워진 것들입니다. 고대로마의 

건축공법 중 대표적인 것은 아치형 태이며, 이는 무게를 여러 군데로 분한 하여 지탱하게 하는 

지식이 사용되었습니다. 

 

2. 중세의 과학 

 1)중세의 상황 

 고대 로마가 붕괴되자 서부의 유럽에서 교육제도가 정착하지 못했습니다. 그 가운데에서도 

수도원을 중심으로 진행된 연구가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신학을 우선시하는 분위기였는데 

그렇기에 학문은 종교와 관련한 수단으로 작용된 경우가 많았습니다. 

 2) 르네상스 과학 발달 

 유럽은 르네상스 시기를 맞아 경험적인 지식의 중요성을 강조하였습니다. 갈릴레오갈릴레이는 

많은 실험을 하였고 마찰, 관성, 중력 같은 과학적 현상도 관찰하였습니다. 또한 망원경을 이용해 

천체를 관측하고 연구하였습니다. 

 3) 항해술과 지리학 

 중세에는 항해술이 발전하고 지리학도 확장되었습니다. 15세이게 명나라에 있던 정화는 인도양을 

항해하며 무역의 판로를 개척하였습니다. 정화가 하는 항해는 고대 인도쪽의 무역로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유럽에서도 대항해시대가 시작되었는데요. 이러한 항해로 지리적인 인식이 크게 

확장되었고, 지리학역시 큰 발달을 이루었습니다. 

 

3. 근대의 과학

 1)과학의 혁명 

 17세기 이후에 유럽에서 자연주의, 경험주의 확산이 이루어졌습니다. 검증된 지식을 인정하게 되는 

풍토가 조성되었고, 이를통해 과학적인 방법론이 수립되기도 했습니다. 아이작 뉴턴이 고전의 역학을

정립하고 지구공전궤도와 같은 업적이 생기면서 천문학, 물리학, 화학 같은 학문들이 등장하기 시작하였고

폭발적으로 발전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때의 과학발전을 과학혁명이라고 하게 됩니다. 

 찰스다윈은 자연선택에 의해 진화되는것이라는 진화이론을 발표하였습니다. 다윈의 이런 이론들은 

기독교 등과같은 종료의 반발을 사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오늘날의 현대 이론으로 크게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그레고어 멘델은 멘델의 유전법칙을 발견하였고 이것은 20세기 초에 들어 여러 과학자들을 통해 

재발견되었습니다. 

 2)과학의 그림자 

  근대의 과학발전은 전 세계를 하나로 묶인 시장으로 연결해 주었습니다. 인류는 이를 통해 빠르게 

물자를 거래하였고, 유럽의 강대국들은 이 시기의 발전으로 제국주의 정책을 취하기도 했습니다. 

 

4. 현대의 과학 

 20세기에 들어선 과학을 현대과학이라 합니다. 현대과학은 아주 세분화되었고 하위에 전문적인 

학문들을 구성하게 되었습니다. 

 1) 우주탐사

 20세기 이후에 현대사회에서는 우주탐사 시대가 열렸습니다. 인류는 달을 탐험하기위해 노력하였고 

망원경을 궤도에 띄워 외계세계를 관찰하기도 했습니다.  

 2) 유전학의 발달 

 유전학과 분자생물학은 크게 발전하였습니다. 유전성 질환에서의 유전자가 하는 역할이 밝혀지면서 

인간의 게놈지도가 완성되기도 했습니다. DNA의 구조는 복제와 유전 형질의 관련성을 암시하기도 

하였습니다. 크릭과 왓슨은 이것의 공로로 노벨생리학, 의학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3) 핵에너지의 사용 

 물리학의 발전으로 핵에너지와 새로운 물질이 발견되었습니다. 19세기 이후에 연구되고있던 

방사능 물질들이 핵융합과 핵분열의 조작을 가능하게 만든것인데요. 이는 보고 과학자들은 자연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플루토늄과 같은 물질들을 합성하였습니다. 핵물리학은 핵발전소의 지식과 같은 평화의 

분야에 이용되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핵폭탄과 같이 무기를 초월하게 되는 파괴력을 가지기도 

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현대 과학이 점자 발전되고 있다는 것을 점증적으로 보여주는 과정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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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학은 개념을 파악하려는 과정에서 개념에 대한 후속적 재건을 시도하는 것이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자연과학이란 인문학 언어학에서는 물질계에서 생겨나는 현상들을 과학적인 방법으로 분석하여 
얻게 되는 지식 체계입니다. 언어학을 알기 위한 한 가지 분야인 자연과학에 대하여 알아보겠습니다. 




1. 자연과학 개요 


인간은 선사시대때부터 자연법칙에 연관된 생활을 해 왔습니다. 도구와 기계를 사용하고 
불을 이용하여 점차 성장하였는데요. 고대시대에 들어서는 거대한 건축물도 생기고 기술도 
점차 발달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근대 과학은 르네상스시대에 유럽에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갈릴레오갈릴레이는 자연을 거대한 기계로 바라보았고, 자연 안에 수학적 언어로 기록이 되어있다고

파악하였습니다. 그 이후 자연과학에서는 수리적인 모형을 이용해서 자연현상들을 설명하는 것이 
보편적으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이런 세계관으로부터 출발한 것이 근대 자연과학입니다. 데카르트의 방법론과 뉴턴의 운동법칙발견은 
지금 현시대와 같은 학문의 체계를 이루는 기반으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경험적인 실험을 통해 자연의 법칙을 발견하는것이 과학의 한 분야 특징으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2. 과학적인 방법 


과학적인 방법은 실험적 검증에 기초를 두게되는 연구방법입니다. 믿음에 기초하고 추척하거나 
설명하는 것이 아닌 논증, 증거를 통하여 이를 검증하는 방법입니다. 그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2-1) 관찰 
관찰이란 자연현상을 기록하고 조사하는 것. 과학적인 방법은 관찰된 현상들이 어떻게 생겨나게 
된 것인지 알아내는것에 목적이 있음. 특히 물질성분분석, 온도변화 측정 등이 모두 관찰에 해당됨. 

 2-2) 가설
가설이란 관찰하게된 현상의 원인을 찾고 나름의 추측을 하는 단계임. 논증, 증거로 검증하기 전에 
가설은 직관적, 실험적인 요소이므로 과학적인 지식으로 취급되지는 않음. 그러나 과학적인 방법은 
경험을 기초로 한 근거로 판단하게 되므로 언제든 반례가 등장할 수 있음. 우리가 알고 있는 인정받는 
지식들도 반례가 나타나게 되면 수정될 가능성이 있으므로 모든자연과학의 법칙들은 가설이라고 
보기도 함. 

  2-3) 실험
실험이란 적절하게 통제를 가지고 관찰하려는 현상을 단순화하게 됨. 그리고 예상한 것과 같이 진행되는지 
측정하고 기록하는 것. 연구에 따라서 다양한 방법들로 진행 됨. 

  2-4) 검증 
과학적인 방법에서의 검증은 결과를 가지고 예상이 옳은지 아닌지 논증하는 과정임. 
일반적인 결과는 실험군, 대조군을 비교하여 가설이 옳은지 그른지를 가리게 됨. 

  2-5) 일반화
실험, 검증의 과정을 거친 후 논증된 가설들이 검토되고, 일반적인 사실이라고 인정받은 지식들은 
자연과학의 법칙으로 불리우게 됨. 

 3. 자연과학의 분야 

  3-1) 물리학 
물리학은 물체사이에 있는 상호작용, 물체의 운동물질이 구성하는 성질과 에너지를 연구하여

자연을 이해하게 되는 학문을 말한다. 화학생물학 등과 함께 자연과학을 이루고, 자연과학 중에서는 
가장 기본이 되고 체계화 된 학문을 말한다. 물질에 대하여 연구하는 자연과학 중 한 가지 분야이고 
힘, 에너지 등과 같은 개념을 포함한 공간에서 운동을 연구한다. 더 나아가서는 우주의 존재에 대해 
탐구하는 학문이라 할 수 있다. 물리학의 대상은 은하계부터 원자입자까지 무척 광범위하다. 
물리학이 다루는 연구들은 다른 과학의 모든 지식들과 연결되어 있다. 이러한 이유때문에 물리학은 
기초과학으로 불리기도 한다. 현대사회의 물리학은 핵물리학, 열역학, 양자역학, 입자물리학 등과 같이 
하위의 학문으로 세분화 되어있다. 

 3-2)생물학 
생물학은 생물들의 기능과 구조를 과학적으로 연구하고 생물의 종류에 따라 식물학, 미생물학, 동물학으로

나뉜다. 대상의 현황이나 연구방법에 따라 생리학, 세포학, 유전학, 생물지리학 등으로 다시 또 나뉜다.

현대의 생물학은 부르다 흐, 트레비라누스, 라마르크와 같은 여러 학자들을 통해 독립적으로 자리 잡았다. 
생물학은 하위의 학문을 포괄하는 주제를 다루는 학문이다. 현대생물학의 주요분야는 에너지 유전자 세포이론 등등을

들 수 있다. 생물학에서 생물을 분류하는데 학명을 명명하는데, 동물들은 동물학명 국제코드에 따르며

균류와 식물들은 각각 균류, 식물 학명 코드를 따른다. 이 외에도 바이오리드, 프리온과 같은 유기체는 
바이러스 명명국제코드를 따르고 있다. 또한 여전히 많은 바이러스들이 분류되지 않고 존재한다. 

 3-3) 화학
화학은 물질들의 조성과 구조, 성질, 변화 그리고 그에 수반되는 에너지를 변화하고 그 연구분야를

지칭하는 자연과학의 한 분야라고 할 수 있다. 물리학도 물질을 다루고 있지만 물리학이 화합물과 
원소를 모두 포함한 물체들의 운동, 에너지, 기계적, 전기적, 열적 속성을 모두 다루고 이러한 현상들에
부터 통일된 이론들을 구축하려고 한다는 특성이 있다. 반면 화학은 물질 자체를 연구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화학은 이미 존재하고 있는 물질들을 이용해 특정한 목적에 맞게 새로운 물질을 합성하고 
이것은 농작물을 증가시키고 질병을 치료, 환경오염의 감소 등 다양한 장점을 가지고 있다. 

 3-4) 지구과학
지구과학은 지구가 대상이 되어 학문을 연구하고 그를 묶어서 부르는 이름이다. 일반적으로 "지구과학"이라고 
불리는 학문은 대기에서 벌어지는 현상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 기상학, 지구 표면의 물질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 지질학, 바다의 현상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 해양학, 지구 깊은 곳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을 
대상으로 하고있는 지구물리학 등을 일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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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은 인간의 행동과 마음을 과학에 근거하여 연구하는 과학의 한 부분입니다. 

인문학을 알기 위해서는 심리학에 근거하여야 하는데요. 

오늘은 심리학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1. 심리학의 정의 

 인간과 동물의 정신과정과 행동에 대해 질문하고 답을 찾는 과학 중에 하나입니다. 

 심리학이라는 단어는 그리스어 가운데 영혼이라는 뜻을 가진  psyche와 어떤 것을 연구한다는 뜻의 

logos가 합쳐진 것입니다. 초기에 심리학을 두고 영혼에 대한 탐구라고 이야기 하였습니다. 

초기심리학자들이 신학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인데요. 

 심리학에 대한 정의는 주제와 함께 시간에 따라 점차 변하였습니다

 심리학이 과학으로 인정받게 된 19세기 후반가량이 되어서는 정신과학 분야로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1-1) 심리학의 마음 

   마음은 심리학에서 연구대상으로 삼고 있습니다. 또 다차원적이므로 마음에서의 어떠한 측면, 

   어떠한 대상을 삼는지에 대해서 시대적으로 많은 차이가 있었습니다. 또 시대에 따라 정의하는것도 

 꼭 같지는 않았습니다. 

 

 2. 심리학의 역사 

 그리스의 과거 주장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육체에서 독립하고 이데아의 시계에 존재하고 있는 영혼을 

고려한 플라톤, 육재를 형상화하는 영혼, 육체는 육체로만 보고 활동하게 하는 원리로서 생각한 

아리스토텔레스, 영혼도 만물의 운동에 포함된다고 생각한 데모 크리토스나 에피쿠스의 주장이 있었습니다. 

  2-1) 플라톤의 영육 이원론 

 중세의 그리스도 사상을 지배하였습니다. 근세에는 물질이 가진 본질을 연장하며 정신이 가진 본질을 

사유하게 된 데카르트의 물심이원론에 함께 계승되었습니다. 19세기에 시작된 현대의 심리학에서 

정신과 육체에서 독립하여 존재하는 것은 생각할 수가 없고, 정신을 그 자체로 연구하려는 사람들이 

이론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2-2) 통일되지 않는 세가지 입장

 첫째, 정신은 육체에 완벽하게 의존한다고 봄. 암묵중이든 자각적이던, 생리학이 미발달 한 상태에서만 

 심리학은 필요하다.  최종적으로는 생리학에 환원될 것이라고 생각함. 

 둘째, 확실하게 정신은 육체를 발판으로 가지고 발생하며 육체에 규정됨, 정신으로서의 성립하였기에 

 역으로 육체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함. 

 셋째, 육체가 없는 정신은 없고 정신이 없는 육체는 생각할 수가 없다고 생각함. 정신과 의식을 동일하게 

생각하는 입장과 무의식으로 생각하는 입장도 있음. 정신을 연구하게하는 방법에 이르러서 그것들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여 입장이 다양함. 

 

3. 근대의 심리학 

 근대에서 학문으로서의 심리학이 시작되었습니다. 영국에서 경험론에 의거하는 로크와 흄 등이 

있는 연합심리학에서 부터 인데요. 이 학파에 따르면 인간이 태어났을 때는 백지상태이고, 경험을 할수록 

관념이 생겨나고 다양한 관념이 연합하여 정신이 형성된다고 보고 있습니다. 정신은 경험에서 오는 

관념이고 그 자체로서의 존재는 가지지 않는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 요소들은 데모크리토스, 에피쿠로스적의 원자론 계통을 잇고 있습니다. 

 연합심리학의 요소주의, 정신내용등을 연구대상으로 하고 있고 1879년에 세계에서 처음 심리학을 실험한 

분트에 의하여 계승되었습니다. 분트는 직접 경헙하고 감정, 감각, 의지 등의 요소를 파악하며 

그들의 요소가 함께 구성된 것을 심리학의 연구라고 하였습니다. 

 3-1) 윗슨의 행동주의 심리학 

 연합심리학과 경험주의 요소주의등을 충실하게 계승한 심리학입니다. 하지만 파블로프의 조 건반사학에 

영향을 받은 윗슨은 연합심리학에서의 관념요소가 자극과 반응으로 치환되어 있고 내관의 법의 부정되어 

행동되는 객관적인 측정이 가능한 것들이 연구대상이 된 점은 차이가 있습니다. 

 의식이라는 것은 당사자밖에 모르는 것이고 주관적 현상들은 객관적인 과학으로서 대상이 될 수가 없다는 

것이 윗슨의 주장이었고, 여기에 대응하여 의식이 없는 심리학이다 라는것이 성립하였습니다. 

 

 4. 현대의 심리학 

 요소주의를 배척하고 정신을 파악하려는 전통들도 소멸한 것은 아닙니다. 여러 가지 이론들에 따라 차례로 

나타나고 있으며 현재까지 이르고 있습니다. 볼프의 능력심리학도 그중의 하나입니다. 그에 따르면 정신은 

여러 가지 수동적인 집합은 아니며, 여러 가지 능력을 가진 능동적인 실체라고 정의됩니다. 

감각과 기억, 오성, 의지 등은 정신적인 능력으로 설명되고 있습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라는 데카르트의 의식에서 출발하였고, 의식의 지향성은 인간의 이해를 

중심에 두고있는 사르트르에 의해 계승되었는데, 심리학의 그 자체로는 힘을 가지지 못하였습니다. 

 제임스의 기능주의 심리학은 의식의 흐름이라는 말속에서 알 수 있고, 개개인의 요소가 아닌 하나의 큰 

흐름에서 의식이 가진 기능을 문제로 하였습니다. 

 행동주의 심리학과 게슈탈트 심리학은 크게 대립하였습니다. 아카데믹 심리학도 다양하게 전개가 

되었습니다. 행동주의의 입장에 있는 사람도 반응과 자극을 연결하기만 바란 것이 아니라, 판단과 습관 

요구 등의 여러가지를 상정할 수 있도록 주체를 가지고 오게 되었습니다. 

 게슈탈트의 심리학은 학파로 많은 세력을 잃었고, 그 자체는 사회심리학에 도입되었습니다. 

 심리학과 철학은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요, 이는 모든 인문학으로 통해지는 것입니다. 

 철학은 심리학자들의 가설과 관심대상, 연구방법에 대해 규제하고 그 이론을 해석하며 일방 화하는 것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행동주의 심리학과 실증주의철학, 생물학주의 심리학, 현상학적 심리학 등과함께 

밀접하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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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의 기초를 알기위해 언어학에 대하여 알아보겠습니다. 

언어학이란 인간이 사용하는 언어를 과학적으로 접근해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인간이 사용하고 있는 언어들의 기능과 본질을 과학적으로 접근하여 연구하고 인간이 지닌 문법같은 

것들을 체계화와 규칙화하는 연구 목적을 가지고 있는데요. 

언어학은 크게 자연과학, 인지과학, 사회과학 총 세가지로 분류됩니다. 

오늘은 그 가운데 사회과학에 대하여 알아보겠습니다. 

 

1. 사회과학의 정의 

 사회과학은 다양한 사회의 현상들을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여기에는 시장경제도 포함되어 있는데요. 

 사회과학에서 다루는 현상들은 그 자체의 구성뿐만이 아니라 사회를 바라보며 일어나는 정치와 문화, 

경제등의 사건들과 개인의 심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회과학에는 다야한 학문들이 

존재합니다.

 

2. 사회과학의 종류

 1)인류학

 인류학은 그리스어로 인간과 학문이 합쳐진 말입니다. 인간에 대한 모든것을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인간은 문화적 특징이 있는 존재로 인류학의 학문에서는 두가지 측면을 모두다 포괄하고 

광범위하게 접근되고 있습니다. 19세기 이후에는 학문으로 체계화가 되었으며, 미국과 유럽 등에서도 

각기 다르게 관심을 가지며 점차 발전되어 왔습니다. 

 그 하위 학문으로는 형질인류학과 문화 인류학, 고고학이 있습니다. 

   1-1) 형질인류학: 인간의 진화와 기원을 다루는 분야이며 인류에 대한 다양성을 연구하는 분야

   1-2) 고고학 : 선사시대와 같이 아주 오래된 유적등을 연구하고 그당시의 문화를 규명.

   1-3) 문화인류학: 오늘날에 다양하게 존재하는 문화들을 총체적으로 연구함. 

  

  2) 사회학

  사회학은 인간사회에서의 사회적 행위를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사회학의 창시자는 프랑스의 지식인인 

오귀스트 콩트입니다. 인간의 세계도 자연의 세계처럼 동일하게 연구될 수 있다고 보고 있는데요. 

인간사회를 탐구하는 과학의 필요성을 주장하였고 사회학은 사회질서와 진보의 법칙을 연구하는 것 

이라고 정의하였습니다.  

 사회학은 주제면에서도 매우 광범위한 학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양적연구의 방법을 통하여 계급과 

같은 사회계층, 종교, 법률, 문화 등을 연구하였습니다. 하지만 근래에 들어서는 의학, 처벌과 같은 

여러 사회제도와 인터넷의 확장으로 생긴 새로운 관례, 과학 지식 등으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또한 최근에는 

사회네트워크의 분석을 위하여 컴퓨터 연산 기법 등도 함께 사용되고 있습니다. 

 

 3) 경제학 

  경제학은 경세지민의 준말입니다. 인간의 생활중에 부, 재화의 분배, 생산, 소비활동을 중점으로 다루는 

사회과학의 한 분야입니다. 

 애덤스미스는 경제학으로 경제학의 아버지라고 불리우고 있는데요. 애덤스미스가 쓴 국부론은 경제학이

사회과학으로부터 독립된 학문으로 생각하게 만든 저서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경제학은 재화와 소비, 생산과 분배 등과같은 경제의 현상을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복잡한 경제활동에서 

특정한 규칙을 발견하고, 경제현상들의 원인과 결과들을 탐구하는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경제학은 자원 등의 경제적인 가치가 있는 대상이 희소하며, 이것을 선택할 때 기회비용이 발생한다는 

전제를 가지고 있는데요. 공기와 같은것들도 공짜는 아니다 라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경제학은 이렇게 경제활동에서의 규칙을 찾고 이것을 바탕으로 미래에 생길 경제를 예측합니다. 

  

 4)정치학 

 정치학은 정치의 체제나 행위같은 현상들을 탐구하는 사회과학 학문입니다. 

 정치학은 연관지어지는 정치적 사건들과 조건을 살피고, 세계의 정치방향을 연구합니다. 

 그리하여 그 안에 있는 여러 규칙성을 발견하고 그것을 개념화 하는 작업입니다. 

 정치학의 하위 분야로는 정치철학, 국제정치학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5) 지리학

 지리학은 경제, 인구, 주거, 문화 등의 인문환경들을 다루는 한 분야입니다. 자연지리학은 자연과학으로부터 

분류되는것에 반해서 사회과학의 한분야로도 다루어 지고 있습니다. 

 지리학은 인간이 살고 있는 지표상의 성격을 밝히는 학문입니다. 지리학을 이해하는 세상에 살고있는 사람들의 

모습들은 지역이나 장소에 따라 다르고, 이러한 차이점을 땅에 연관지어 생각하고 있는데요. 

 본인의 정체성을 확인하기 위해 다양한 사람들과 접촉하고, 그들을 통해 서로의 문화와 역사, 종교 등을 

열린 마음을 가지고 이해하는 것을 말합니다. 

 지리학은 고대부터 시작되어 서로간의 관계들을 밝혀오고 있습니다. 

 지리학은 다른 학문과는 달리 자연과학과 인문사회과학의 개념들을 모두 적용되는 것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6) 법학 

  법률을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민법과 상법, 형법과 같은 법률을 해석하는 법 해석학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법의 개념을 정리하고 종류를 분석 하여 적용하는방법을 연구합니다. 

 법에 대한 연구는 인문과학과 사회과학 사이의 경계를 넘나들고 있습니다. 또한 그 효과를 연구하고 있는 연구자의 

시각에만 의존하는데요. 법은 국제관계의 맥락에서 강제할 수 있는것은 아닙니다. 

 국민들의 이해를 얻기위한 권위이며, 주권자의 명령, 하나의 규칙체계로 정의 되고 있는데요. 

 모든 사람들이 법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만큼 법은 철저하게 중앙 집중적인 사회제도라 볼 수 있습니다. 

 법은 철학과 마찬가지입니다. 도덕적이며 윤리적인 신조들이 그것을 구체화 하기 때문입니다. 

 법은 또 역사로 이야기 합니다. 판례법과 성문법 등이 시간속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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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인문학 이야기 독일의 철학자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쇼펜하우어는 독일의 철학자이며, 칸트의 사상을 바르게 계승했다고 믿는 철학자 입니다. 

쇼펜하우어는 본인이 아닌 피히테, 셸링, 헤겔등이 칸트의 사상을 왜곡했다며 

사이비론이라고 주장하고 비판하였는데요. 

19세기에 많은 사상가들에게 영향을 끼친 쇼펜하우어에 대하여 알아보겠습니다. 

 

1. 쇼펜하우어 유년시절 연보

 1) 1788년 출생하였으며, 소설가인 어머니와 상인이었던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2) 1793년에는 가족이 함부르크로 이주 하였다.(단치히의 합병으로)

 3) 1797년에 여동생인 아델라가 출생했다. 이로인해 쇼펜하우어는 아버지의 친구집인 프랑스에서 

 2년간 머무르게 되었고, 이때 프랑스어를 익히게 되었다. 

 4) 1799년에 프랑스에서 돌아오게 되었고, 룽게박사의 사립학교에 입학하였다. 이곳은 상인 양성기관이며 

 이곳에서 4년정도 공부하게 된다. 아버지는 쇼펜하우어를 사업가로 성장하기를 원했다. 

 5)1803년인 15세에 유럽여행을 하게 된다. 가족들은 상인이 되기를 희망하지 않는 쇼펜하우어를 

 달래기 위해 이 여행을 기획했고, 런던에서 영어를 익히게 하였다. 

 6)1804년에는 많은곳을 여행하며 고민하였다. 상인실습도 하였으나 무관심하였고, 

 아버지의 서재에서 문학이나 역사 등을 독학하였다. 

 7)1806년인 18세 아버지가 창고에서 떨어져 사망하였다. 아버지의 사망후에 바이마르로 이주혔으며 

 쇼펜하우어는 함부르크에 남아 실습을 계속하였다. 

 8) 1807년 어머니가 권유하여 김나지움에 입학하게 되었다. 고전어를 배우게 되었고 

 쇼펜하우어를 가르친 교사들은 뛰어난 고전학자의 자질이 있다며 칭찬하였다. 하지만 쇼펜하우어는 

 1년도 다니지 못하고 김나지움을 자퇴하였다. 

 

2. 쇼펜하우어의 윤리학

 서양의 철한자들은 전통성이 있는 신학으로 벗어나고 인간의 행동에 옳고 그름을 보는 

합리주의적 기준을 찾으려고 하였습니다. 또한 그들은 더이상 도덕이 종교에만 근거할 수는 없다며 

감정보다는 이성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하였는데요. 도덕의 원리는 증명될 수가 없고, 이성에 의해서만 

파악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본질적으로 인간은 이기적이라고 주장한 토마스홉스의 의견에 반대하고 

 인간은 본질적으로 도덕적인 가치를 가진 정서가 있다고 주장하게 되었습니다. 

 쇼펜하우어는 실제의 현실세계에서 인간의 행동을 분석하고, 그것을 통해 도덕적인 근거를 제시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쇼펜하우어는 다른이가 시도하지 않았던 방법으로 콜럼버스의 달걀에 비유하였고 

이는 가장 자연스러운 방법이라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3.쇼펜하우어의 영향 

 쇼펜하우어는 인문학의 철학자이지만, 과학과 예술 분야에도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렇지만 쇼펜하우어의 영향을 아주 많이 받은것은 바로 문학분야일 것입니다. 

 많은 문학가들이 쇼펜하우어의 사상으로 큰 도움을 받았다고 인정하였는데요, 

톨스토이와 에밀졸라, 헤르만헤세, 조지프콘래드와 같은 창작가들이 모두 그 영향을 받았다고 

이야기 하였습니다.  특히 헤르만 헤세는 불교의 영향이 있는 색채를 볼 수 있는데, 이것은 쇼펜하우어의 

사상이 깃들여 있다고 평가 받기도 했습니다. 

또한 쇼펜하우어의 이름이 안나 카레니니라는 톨스토이의 작품과 테스라는 소설에서도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앙드레지드는 쇼펜하우어를 통해 위로를 받았다며 

쇼펜하우어보다 헤겔을 더욱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황당한 일이라는 내용을 

자서전에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4. 쇼펜하우어의 인식론

 쇼펜하우어는 철학논문을 발표하며 충족이유율이 가진 종류가 구분되어져야 한다고 

강조하였습니다. 옛 철학자들은 원인과 인식이유를 혼동했다는 사실을 지적하였습니다.

두 이유율의 차이를 제일 처음 설명한 사람이 크리스티안 볼프입니다. 하지만 볼프는 그 차이를 명백하게 

규정하지는 못했는데요, 

 쇼펜하우어는 원인간의 구분과 인식이유 외에도 두가지의 이유를 더 구분하였고, 네가지의 충족이유율을 

더 제시하였습니다. 바로 생성과 인식, 존재, 행위가 그것인데요. 

 충족이유율은 세계가 따라야 하는 법칙이라고 정의 하였습니다. 

쇼펜하우어에 따르면 자신이 오직 의욕하는 것으로 생각하는것이 인식주체이며, 의욕이란 우리가가진 

모든 인식을 통틀어 가장 직접적인 것을 만한다고 주장합니다.  

 또한 의욕이 가진 주체는 직접적으로 주어진 것이며 상세하게 설명된 것은 아니라고 말하였고 

 모든것에 빛을 던져야 하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나아가서 쇼펜하우어는 이 통찰을 통해 고대인들은 동물들도 지성을 갖고 있다고 믿었다고 

주장했습니다, 모든동물은 인과관계에 대한 인식을 가져야 하고 해파리조차도 오성을 자기조 

있다고 말하였는데요, 쇼펜하우어는 감각에 대하여 나름의 분석과정을 거치고 오성의 작품을 

제시한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를 위한 전제는 바로 인과의 법칙이며 결코 밖에서 올 수는 없다고 

주장하였습니다. 

 

5. 쇼펜하우어의 죽음

 쇼펜하우어는 폐렴증세가 있었는데요, 어느때와 다름없는 아침, 아침식사를 마치고 

소파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습니다.  몇분 후 집으로 들어온 주치의가 쇼펜하우어를 발견하게 되었고 

이미 차분한 표정으로 죽은 후였다고 합니다. 1860년 쇼펜하우어의 장례가 치러지게 되었고 

그의 친구인 빌헬름그비너가 추도문을 낭독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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