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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의 대표 인문학 철학자 하면 플라톤이 떠오릅니다. 

플라톤은 플라톤주의, 플라톤철학이라는 말이 생겨나올 정도로 

정통 철학자 중 한명 입니다. 

플라톤은 유명한 소크라테스의 제자이기도 하며, 아리스토텔레스의 스승입니다. 

영국의 유명한 철학자는 서양의 철학은 모두 플라톤의 각주이다 라고 말할 정도로 

영향을 많이 끼친 철학자이며, 시인인 에머슨은 플라톤은 철학이며, 철학은 플라톤이다 

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1. 플라톤 이야기

 1)생애

 플라톤은 명문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아테네에 있는 그의 고향에서 소크라테스에게 

많은 것을 배웠고 그로인해 결정적인 영향을 받게 됩니다. 

 플라톤의 저서에는 대부분 소크라테스가 주인공으로 되어있는 변증론에 관한 것으로 

스승과 플라톤의 학설에 대해 구별하기 힘들다는 의견이 있습니다. 

 스승의 소크라테스가 세상을 떠나자 그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가지고있던 정치가로서의  

꿈은 버리고 후손들에게 정의를 가르치게 됩니다. 

 2) 저서

 플라톤은 제자 양성을 하면서 저서를 많이 쓰게 됩니다. 

 파이돈과 국가, 향연, 파이드로스 등을 이따 저술 하게 되었고, 그 전에 소크라테스의 변론,

라케스, 크리톤, 고르기아스 등을 저술하였습니다. 

 

2. 플라톤의 교육방법 

 플라톤은 철학자가 왕이되거나, 왕이 철학을 해야 한다 라는 철인 정치론을 펼쳤습니다. 

 플라톤의 교육단계는 총 5단계로 나뉘어 집니다. 

 1) 출생~17세

 이 시기는 기초적인 단계로 보았습니다. 조형미술, 음악, 문예 등이 비교적 낮은 수준으로 

해당되기에 학예, 체육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체육으로 육체의 단련을 한것이 아니라 그 이상의 정신적

도야를 가르치기 위해 활용하였습니다. 이런 자유로운 활동으로 각자 가진 개성을 발견하는데 

목적을 두었습니다. 

 2)17세~20세 

 이 시기에는 군사훈련의 기초가 되는 교육을 중점으로 하였습니다.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곤경을 

참아 낼 수 있는 심신을 키우기 위해 체육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성적이 좋지 않은 자는 

계급을 생산자로 하여 남겼습니다. 

 3)20세~30세

이 시기는 철학의 기초 교과로 생각하여 체계적인 이론을 배우게 하였습니다. 

수학과 음악, 천문, 기하 등의 이론을 전반적이고 체계적으로 다루었고, 이시기의 교육에 성적이 

좋지않은 자는 군인으로 남겼습니다. 

 4)30세~36세 

 이 시기에는 변증법이 주를 이뤘습니다. 감각적인것보다 협의가 강한 변증법을 배움으로서 

순수한 관념적인 본질을 취급하고 깨닫게 하였습니다. 

 5) 35~50세 

 이 시기는 동굴로 들어가는시기로 생각하였습니다. 인간은 이 시기에 정치와 군사를 연구하고 

경험과 견문을 쌓을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3. 공산주의 철학 

 오늘날의 공산주의라 함은 마르크스주의의 견해들이 있습니다. 

 인간은 사회, 정치적으로 독립할 수 없는 개개인이며 더 나은 삶을 위한 사회체계를 만드는것이 

인간의 행복을 상승시킨다는 진리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로인해 인간은 더 나은 사회를 구성할 수 있고 

그를 위하여 이성적존재가 되어야하는 의무가 반드시 있어야 하고, 이런것이 목적론전 인간관이라는 

개념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초기 공산주의의 창시자로 알려지기도 했는데요. 

 이 개념들은 플라톤의 제자인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으로 점차 계승이 되었습니다. 

 

4. 철인 정치 

 1)노블레스 오블리주

플라톤은 기본적으로 엘리트를 통한 지배를 옹호 하였습니다. 귀족들은 평등사회보다는 신분사회를 

옹호하게 되는데 플라톤 역시 신분사회를 옹호하였습니다. 플라톤이 말하는 귀족정의 왕은 노블레스

오블리주와같은 높은 신분이 도덕적인 의무를 중요시하여야 하는데, 그 실현의 예로 왕의 사유재산 형태가 

나타나게 됩니다. 플라톤은 왕의 사유재산이 오로지 공익을 위하여 쓰여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2) 세가지 주된 덕 

 세가지 주된 덕에서는 조화를 볼수 있습니다. 각자의 자리와 신분에서 각자 맡을 일을 하고 

그것들이 조화가 되어 아름다워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서로 다른 일만을 하거나 

서민들이 전쟁을 한다면 사회적으로 부조화가 된다는 것이 플라톤의 관점입니다. 

 

5. 플라톤의 저작

 플라톤의 저작들은 거의 대화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또한 몇편을 제외하고는 

스승인 소크라테스가 주요 해설자로 등장합니다. 

35편으로 된 대화편과 13편으로 된 서간이 전통적인 플라톤의것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플라톤의 글을 분류하는 방법으로 16세기의 앙리에티엔이 플라톤의 판본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플라톤의 글은 4부극에 따라 배열하게 되었는데 이부분에 대해 타인의 것이라는 의견이 

제시되기도 했습니다. 

 또한 플라톤은 아동발달 연구에 힘썼습니다. 3세까지는 슬픔과 공포에 대해서 경험하는것은 

좋지않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 시기에 경험한것들이 성격에 뿌리를 내리기 때문입니다. 

또한 6세가 되면 남자아이들과 여자아이들이 동성끼리 놀게 하도록 성의 분리를 내세웠습니다. 

이것들은 우리나라 유교사상과 흡사한 부분이 있습니다. 

청년기때 비로 제대로 된 이성이 나타나기에 그 시기까지 성장에 중요함을 주장하였습니다. 

 

6. 플라톤의 명언

 현대에 남겨진 플라톤의 명언이 아주 많습니다. 그중에 몇가지를 소개하겠습니다. 

 -거짓말로 진실을 가리지 말라

 -자신이 세운 목표를 함부로 발설하지 말라

 -자의적으로 남을 비판하거나 평가하지 말라

 -자신과 관련없는 일이나 다른사람의 일에 말을 많이 하지 말라

 -질문은 많이 하되, 자신이 찾은 답이 정답이라고 우기지 말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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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을 알아보며 가장 첫걸음으로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은 

철학이라고 생각됩니다. 

철학은 어떤것이 옳고 어떤 것이 그르다는 것을 판별하는 것인데요. 

삶에 대한 인간의 원리와 본질, 관심사 등을 탐구하고 이야기하는 

학문으로 다루어 집니다. 

인문학의 첫걸음으로 철학자 공자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인문학 철학자 공자 전반

 1) 공자의 생애 

   공자는 기원전 551년에 노나라의 취푸에 있는 시골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부친인 숙량흘은 아들은 없고 딸만 9명을 두었는데요, 그리하여 노년에 낳은 아들이 바로 

공자였던 것입니다. 공자의 어머니와 숙량흘은 정식적으로 혼인한 사이는 아니었습니다. 

숙량흘이 60대 후반이었을때 공자의 어머니인 안징재는 16세의 소녀였습니다. 

 2) 공자의 유년기

 공자는 사생아로 태여났기에, 공 씨 가문에서 부친 숙량흘의 자손으로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그리하여 부친의 재산은 이복형제들에게 상속되었지요. 공자의 모친인 안징재는 눈이 멀어버리는 

병에 걸려 형편이 어려워졌고, 공자는 천한 일들을 하며 어려운 유년기를 보냈습니다. 

 

2. 인문학 철학자 공자의 후반 

 관료생활을 하던 공자는 말년에 고향쪽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후배들을 양성하는데 힘을 쏟았는데요. 공자는 오래된 중국의 경전을 제자들에게 

가르치고 애정을 쏟았습니다. 하지만 아들의 죽음과 아끼던 제자들의 잇따른 죽음에 비통함을 

감추지 못했는데요. 아들이 죽고 나서 남은 손자를 공자가 키우게 되었습니다. 공자의 손자는 

조부의 사상을 이어나가게 되었습니다. 

 1)공자의 제자들

 공자의 많은 제자들 중 남궁도, 자유, 자궁 염백우 등 많은 선비들이 있습니다. 

 2)공자의 말년 

 공자는 기원전 479년에 7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공자가 떠난 후 제자들은 스승의 

뜻을 받을어 유명한 논어를 저술했습니다. 

 

3. 공자의 사후

 공자의 별세 후 장례가 치러졌습니다. 그의 제자들은 부모와 준하는 상복을 입고 

 3년상까지 치르게 되었습니다. 또한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고향에서 애썼습니다. 

 공자의 손자인 자사의 후손들, 그리고 자사의 학파에서 갈려 나오게 된 맹자의 학파들, 

순자의 학파들까지 모두 크게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맹자의 성선설과 순자의 성악설이 크게 자리 잡게 되었는데요, 맹자는 인간의 본성은 착하다는 

학설을 중심으로 내세웠고 순자는 인간의 본성은 악하기에 본성을 다스려야 한다는 성악설로 

크게 유명해지게 되었습니다. 

  명나라가 건국된 후에는 지성선사라는 별칭을 받기도 했습니다. 

 

4. 공자의 사상 

1) 논어 

 논어는 공자가 그의 제자들과 문답형식으로 나눈 언행집입니다. 인간이 가져야 할 행동의 지향점은 

"인"에 있다는 말을 핵심으로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선과 지덕의 뜻이 담긴 인도주의, 명분을 바르게 하며 신하는 신하답게 임금은 임금답게 

부모와 자식도 제 자리에서 본분을 유지하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인간의 본질은 보통 소인과 범인, 악인으로 구분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는데요. 그리하여 제자를 

교육할 때 각인의 이해정도와 능력에 따라 적절한 방법을 사용하고 성품을 개발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그의 명언 가운데 "소인은 끼리끼리 하며 두루두루 소통하지 않고, 군자는 두루두루 소통하나 끼리끼리

하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2) 정치관

 공자는 군자 양성에 힘썼습니다. 군자는 사회와 국가를 끌어갈 지도층의 인사이며 인격의 완성체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군자라는 말은 본디 정치에 참여할 만한 능력과 자질이 있는 귀족계층을 이야기하였으나 

군자는 그러한 지위에 국한하지 않고 지위에 어울릴만한 인격과 교양을 지닌 사람으로 확대하여 

다양한 인재를 양성하려고 힘썼습니다. 

 

 

5. 공자의 공파 

 

  유교사상의 정통학파인 증서, 자사를 계승하였습니다. 맹자는 이를 계승해 학파를 형성하였습니다. 

 자궁은 공자의 또 다른 제자 중의 한 명이었는데, 이 학파에서 순자가 나왔습니다. 

 자궁과 순자 계통의 학파에서는 상앙, 이사 등으로 발전하였습니다. 

  공자의 곡부공 씨는 공자의 이전에도 선조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가문을 본격적으로 일으키게 된 

공자를 시조로 간주하고 있습니다. 

 또한 한국의 공씨는 공자의 후손인 공소를 시조로 하고 있습니다. 공소는 원나라시절에  

고려로 건너온 인물입니다. 원나라가 멸망의 조짐이 보이면서 고려로 넘어왔고, 한국에 있는 공 씨들의 

선조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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