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인문학 이야기 독일의 철학자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쇼펜하우어는 독일의 철학자이며, 칸트의 사상을 바르게 계승했다고 믿는 철학자 입니다.
쇼펜하우어는 본인이 아닌 피히테, 셸링, 헤겔등이 칸트의 사상을 왜곡했다며
사이비론이라고 주장하고 비판하였는데요.
19세기에 많은 사상가들에게 영향을 끼친 쇼펜하우어에 대하여 알아보겠습니다.
1. 쇼펜하우어 유년시절 연보
1) 1788년 출생하였으며, 소설가인 어머니와 상인이었던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2) 1793년에는 가족이 함부르크로 이주 하였다.(단치히의 합병으로)
3) 1797년에 여동생인 아델라가 출생했다. 이로인해 쇼펜하우어는 아버지의 친구집인 프랑스에서
2년간 머무르게 되었고, 이때 프랑스어를 익히게 되었다.
4) 1799년에 프랑스에서 돌아오게 되었고, 룽게박사의 사립학교에 입학하였다. 이곳은 상인 양성기관이며
이곳에서 4년정도 공부하게 된다. 아버지는 쇼펜하우어를 사업가로 성장하기를 원했다.
5)1803년인 15세에 유럽여행을 하게 된다. 가족들은 상인이 되기를 희망하지 않는 쇼펜하우어를
달래기 위해 이 여행을 기획했고, 런던에서 영어를 익히게 하였다.
6)1804년에는 많은곳을 여행하며 고민하였다. 상인실습도 하였으나 무관심하였고,
아버지의 서재에서 문학이나 역사 등을 독학하였다.
7)1806년인 18세 아버지가 창고에서 떨어져 사망하였다. 아버지의 사망후에 바이마르로 이주혔으며
쇼펜하우어는 함부르크에 남아 실습을 계속하였다.
8) 1807년 어머니가 권유하여 김나지움에 입학하게 되었다. 고전어를 배우게 되었고
쇼펜하우어를 가르친 교사들은 뛰어난 고전학자의 자질이 있다며 칭찬하였다. 하지만 쇼펜하우어는
1년도 다니지 못하고 김나지움을 자퇴하였다.
2. 쇼펜하우어의 윤리학
서양의 철한자들은 전통성이 있는 신학으로 벗어나고 인간의 행동에 옳고 그름을 보는
합리주의적 기준을 찾으려고 하였습니다. 또한 그들은 더이상 도덕이 종교에만 근거할 수는 없다며
감정보다는 이성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하였는데요. 도덕의 원리는 증명될 수가 없고, 이성에 의해서만
파악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본질적으로 인간은 이기적이라고 주장한 토마스홉스의 의견에 반대하고
인간은 본질적으로 도덕적인 가치를 가진 정서가 있다고 주장하게 되었습니다.
쇼펜하우어는 실제의 현실세계에서 인간의 행동을 분석하고, 그것을 통해 도덕적인 근거를 제시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쇼펜하우어는 다른이가 시도하지 않았던 방법으로 콜럼버스의 달걀에 비유하였고
이는 가장 자연스러운 방법이라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3.쇼펜하우어의 영향
쇼펜하우어는 인문학의 철학자이지만, 과학과 예술 분야에도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렇지만 쇼펜하우어의 영향을 아주 많이 받은것은 바로 문학분야일 것입니다.
많은 문학가들이 쇼펜하우어의 사상으로 큰 도움을 받았다고 인정하였는데요,
톨스토이와 에밀졸라, 헤르만헤세, 조지프콘래드와 같은 창작가들이 모두 그 영향을 받았다고
이야기 하였습니다. 특히 헤르만 헤세는 불교의 영향이 있는 색채를 볼 수 있는데, 이것은 쇼펜하우어의
사상이 깃들여 있다고 평가 받기도 했습니다.
또한 쇼펜하우어의 이름이 안나 카레니니라는 톨스토이의 작품과 테스라는 소설에서도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앙드레지드는 쇼펜하우어를 통해 위로를 받았다며
쇼펜하우어보다 헤겔을 더욱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황당한 일이라는 내용을
자서전에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4. 쇼펜하우어의 인식론
쇼펜하우어는 철학논문을 발표하며 충족이유율이 가진 종류가 구분되어져야 한다고
강조하였습니다. 옛 철학자들은 원인과 인식이유를 혼동했다는 사실을 지적하였습니다.
두 이유율의 차이를 제일 처음 설명한 사람이 크리스티안 볼프입니다. 하지만 볼프는 그 차이를 명백하게
규정하지는 못했는데요,
쇼펜하우어는 원인간의 구분과 인식이유 외에도 두가지의 이유를 더 구분하였고, 네가지의 충족이유율을
더 제시하였습니다. 바로 생성과 인식, 존재, 행위가 그것인데요.
충족이유율은 세계가 따라야 하는 법칙이라고 정의 하였습니다.
쇼펜하우어에 따르면 자신이 오직 의욕하는 것으로 생각하는것이 인식주체이며, 의욕이란 우리가가진
모든 인식을 통틀어 가장 직접적인 것을 만한다고 주장합니다.
또한 의욕이 가진 주체는 직접적으로 주어진 것이며 상세하게 설명된 것은 아니라고 말하였고
모든것에 빛을 던져야 하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나아가서 쇼펜하우어는 이 통찰을 통해 고대인들은 동물들도 지성을 갖고 있다고 믿었다고
주장했습니다, 모든동물은 인과관계에 대한 인식을 가져야 하고 해파리조차도 오성을 자기조
있다고 말하였는데요, 쇼펜하우어는 감각에 대하여 나름의 분석과정을 거치고 오성의 작품을
제시한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를 위한 전제는 바로 인과의 법칙이며 결코 밖에서 올 수는 없다고
주장하였습니다.
5. 쇼펜하우어의 죽음
쇼펜하우어는 폐렴증세가 있었는데요, 어느때와 다름없는 아침, 아침식사를 마치고
소파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습니다. 몇분 후 집으로 들어온 주치의가 쇼펜하우어를 발견하게 되었고
이미 차분한 표정으로 죽은 후였다고 합니다. 1860년 쇼펜하우어의 장례가 치러지게 되었고
그의 친구인 빌헬름그비너가 추도문을 낭독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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