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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문학에서는 수사학에 대해 빼놓을 수 없는데요. 오늘은 인문학의 한 분야인 수사학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수사란 원래에는 말을 잘하는 기술로 불리었다고 하는데요. 많은 세월을 거치면서 

여러 가지 목적들이 추가되게 됩니다. 

 

 

 1. 수사학의 목적 

 1) 명시적인 의미를 더한 묵시적인 의미가 가진 암시

 2) 문체적 언어, 문학어, 비유적 언어의 사용

 3) 동의와 설득, 납득 등의 창출

 4) 직설적인 의미부터 설정하고 이를 추리함

 5) 저자나 연사의 의도를 파악하고 이 행위에 대하여 이유 등을 찾음

 

넬슨 등은 언어학, 역사학, 문학, 인류학 등이 경제학이나 정치학, 수학과 생물학등 모든 것이 

탐구가 주는 수사학이라고 말하기도 하였습니다. 탐구의 수사학은 이런 방법론에 대해 여러 문맥 속에서 

탐구활동, 또 그 안에서의 언어들과 연결시켰습니다. 이런 부분에서 탐구가 주는 수사학이란 획일적인 횡포에 

대해 부정하고, 여러 사물들이 가지고 있는 특성들을 강조하는 논리들과 공통점을 가지며 포스트모더니즘이 

주는 인식론을 함께 공유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2. 수사학의 세기

 많은 이들이 수사학의 세기에 대해 20세기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특히 모란밸리프는인지수사학, 사회인식수사학,

 전자수사학, 전산의거수사학 등과 같은 여러 가지의 수사학을 규정하고 있었는데요. 이외에도 많은 이들이 남긴

수사학을 칭하는 말들은 다양합니다. 특히 비정초적인 세상에 대한 말이 생겨났는데요. 

 정초주의라는 것이 절대주의와 객관성에 중요성을 둔 것이라면 반정초주의는 다원주의와 상대주의에 입각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진리라는것은 모더니스트들에게는 절대적이고 변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하며 

포스트모더니스트들에게 일시 전이고 개인적인 부분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3. 제문론의수사학 

 메르에르의 주장에 따르면 여러 주장이 가진 수사학에서 하나만이 감춰져 있는데, 에토스와 파토스의 관계같이

로고스와 커뮤니케이션의 수단이 가진 관계라는 것입니다. 논쟁의 대상이 하나의 문제를 통해서 개별화되며

수사에 대하여 생겨난 문제를 주체들 사이의 교섭이라고 정의하였습니다. 수사에 대해서 문제를 통해 진정되며 

시작된다 하여 문제가 가진 중요성에 대해 강조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로운것과 옳은 것, 명예로운 것 등에 대해 말하였는데 이것들이 각각 심의형과 재판형,

그리고 아름다운 것들이 관련된다고 말합니다. 

 1) 제문적 답들 

  문제의 발상으로서 답을 찾는 것은 제문적인 답 가운데 문제들을 추론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다른 수사학에서도 그렇지만 제문적 수사학에서 크게 강조되지는 않아 보입니다. 

 수사학적인 탐구를 시도하기 전에 답에 대해 문제의 제기로 보고 있는 제문론적인 접근법이 필요한 부분입니다.

 2) 언어학

 문학의 사조, 언어학의 이론 등은 새로 어떤 문제를 발견할 때 이 루어집닌다. 패러다임이 전환될 때 

하는 연구가 전부는 아닙니다. 외국어에 대하여 그 문법을 언어학요소가 아닌, 번역의 요소로 접근하는 것 똫나 

하나의 연구입니다. 

 언어학적으로는 프랑스어가 많은 문제를 안고 있었습니다. 프랑스어가 가진 문법들은 문장에 대한 설명이 많았고 

다른 언어의 이론을 잘 설명해내지는 못했습니다. 이러한 전통문법이 가진 존재에 대하여 여러모로 부정하기는 

어려운 부분입니다. 구조주의의 언어학을 넘어서게 되었고 언어학의 혁명으로 생겨난 생성언어학도 본래의 

언어능력에 따라 시작된 것입니다. 이런 문제 제기의 관점에서부터 접근하게 되면 구조주의는 언어의 차이라는 

문제를 통해 출발하게 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3) 대안

 크로스화이트의 주장에 따르면 논증의 행위는 특정하게 된 어떤 주장의 사이에 명백해진 갈등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갈등이 없다면 논증 또한 없고 질문도 없게 되며 새롭게 이야기할 주제도 없어집니다. 갈등이란 논증의 행위에서 

선행하는 것이고 논증을 하고자 한다면 먼저 갈등에 대해 발견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불일치가 결국 발견을 낳게 된다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논증 발견에 관심을 갖는 것이 또 하나의 방법이라는

것인데요. 논증의 행위에 대해 폭력에 대비하는 대안이라는 뜻인데 이것이 진정한 대안이 될 수 있도록 많은 이들이 

다각도로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4. 수사학의 재발견

 우리가 수사학에 대해 재발견한다는 의미는 학문적인 탐구분야에 수사학을 받아들이겠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학문적인 탐구에 대해 다양성과 불확실성의 의미로 받아들이게 된다는 뜻인데요. 메이에르는 이에 대해 

수사란 불확실한 상황과 그럴만한 상황 등등을 합리적인 문제로 보고 있습니다. 

 메이에르의 이러한 관점들이 모든 필연성과 이성, 명증성 등이 철학과 단절하겠다는 의미를 가지기도 합니다. 

 이런 부분들은 수사학에서 지속적으로 견제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토마스쿤은 자연과학의 문학들 중 전문적인 청중들의 설득이 핵심적 인문제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이에 대해 새로운 국학에 대해정의하고 이것들을 널리 알리게 되는 것이 새로운 과제라는 것입니다. 

수사학적, 제문론적 발견이 선행되어야 하고 이로서 의미가 상승된다는 것입니다. 메리에르가 말한 질문의 수사학들은 

발견의 수사학에 하나의 발판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이런 부분에서 이성적인 수사학 등 여러 가지 수삭학들이 

생겨나게 되고 많은 도움을 주게 된다면 인문학의 담론은 더욱 풍부해질 것이라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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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은 서양철학과 동양철학으로 크게 나뉘어 볼 수 있습니다. 서양의 철학이란 서양에서 생긴 철학적

생각과 관련지어 생겨난 용어입니다. 동양의 철학은 여러 지역에 있는 토착적인 느낌이 강한데, 서양철학은

이와는 대비되는 느낌이 있습니다. 서양철학이라는 말은 서구에서 철학적인 사고를 하며 만들어졌는데요. 

고대의 그리스철학부터 오스트레일리아, 북아메리카등 지구안에 있는 넓은 영역에 걸쳐 표현되기도 합니다. 

철학이라는 용어는 그리스에서부터 유래되었는데요. 지혜, 사랑, 지식등이 포함된 단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현대 시대에서보면 서양의 철학은 대륙철학과 분석철학 두 가지로 나누어질 수 있습니다. 

1. 서양철학기원

  1) 철학의범위

 철학의 범위에 대해 다양한 의견들이 있지만, 고대의 철학자가 쓴 글을 보면 모든 지적인 노력도 철학에 포함

됩니다. 그들은 철학에 대해 여러 분야에 들어가는 다른 문제들도 함께 다루고 있습니다. 천문학이나 생물학, 

물리학, 수학 등 자연과학 쪽에 속하는 것들도 철학에서는 함께 다루고 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이런 내용들에 

관련된 책을 쓰기도 했습니다. 17세기에도 이런 분야들이 철학의 한 부분에 속하기도 했습니다. 시간이 지난 뒤 

대학에서 여러 과학들은 철학과는 다른 학문이다라고 정의하였는데요. 수학은 전문적인 과학으로 분류되었고

자연의 철학은 과학이 발전하는 시작이 되는 길이 되었습니다. 철학적인 질문은 다양하지만 과학에 관련된

것들과는 다르게 구분되었고, 과학적 질문과 다르게 인간의 본성에 대한 원리적인 부분을 묻고 있습니다. 

철학이 가진 질문은 과학처럼 실험을 근거로 답변하지 않는다는 특징도 있습니다.       

 2) 서양철학 용어

 용어의 경계는 19세기와 20세기 사이에 형성되었습니다. 이전의 시기에 유럽 사람들은 철학이나 문화에 대해 

서양이라고 분류하지 않고, 다른 국가의 사람들과 언어, 지리, 개인적인 부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많은 부분이 정확하지 않았고, 유럽 건너에 있는 지역들에 정치적인 차이가 있었으나 잘 알려지지는 않았습니다.

 특히 유럽과 떨어져 있는 곳에서 정보도 많이 없었습니다. 서양의 철학은 유럽에서 생겨난 것으로 유럽 쪽에서 

형성되었습니다. 현대에 서양철학이라고 단정 짓는 것은 그리스와 로마, 기독교와 유대문화, 계몽주의와 식민

주의 등으로 정의됩니다. 서양철학이라고 말하는 용어에 대하여 수천 년간 상반되게 정치와 종교, 전통등을 

모두연관 짓는 개념이기에 이해하기는 조금 힘들다고 볼 수 있습니다. 

 2. 서양철학과 대조되는 분야들

 1) 신학, 종교학

 종교와 관련하여 철학과의 공통점은 대부분 연구 없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신학은 신에 대해 본성과 존재를 

다루고 있으며, 종교철학과는 관심사가 비슷한 부분이 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신학에 대하여 형이상학을 

통해 나온 줄기라고 보고 있으며 철학과도 비슷한 분야라고 생각했는데요. 많은 서양의 철학자들이 신학과의

연관성에 대해 찾으려 노력했습니다. 많은 종교가 차이가 있듯, 철학과 종교의 연구도 구분됩니다. 

 종교의 연구를 보면 사회학과 역사학에 조금 더 가까우며, 어떤 특정한 종교처럼 명확히 구분되지는 않습니다. 

 철학에서의 경험론은 종교적 질문에 대해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지식이 가진 한계를 뛰어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종교적인 부분에서의 정확한 답은 아직까지도 찾지 못했습니다. 어떤 철학자들은 종교적으로 생긴 믿음을 두고 

반대와 옹호의 개념으로 접근하기에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20세기 이후의 철학에서는 종교적인 부분에 대해 

심도 있게 생각한 철학자는 적은 편입니다.   

 2) 자연과학 

 철학과 학문은 원래 비슷한 말이고, 지적인 노력에도 함께 적용됩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윤리학과 형이상학,

기상학, 우주론 등을 연구할 때 화학과 물리학은 자연철학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뉴턴이 말한 수학적 원리들이 

자연철학으로 구분되는 것을 예로 들 수 있는데요. 화학과 물리학은 과학에 속합니다. 하지만 철학과의 구분이 

정확한 것은 또 아닙니다. 어떤 철학자들은 아직도 철학과 과학이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언어학과 사회학, 경제학 등은 철학자가 함께한 영역이었습니다. 하지만 현시대에서는 철학과는 살짝 연관성이

있을 뿐입니다. 20세기 후반에 들어서면서 인공지능이 인지과학으로 발달하게 되고, 이때 심리철학과는 

분리되는 현상을 볼 수 있었습니다. 

 철학은 실험과 연관된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한 반성으로 이루어집니다. 하지만 일부의 철학은 과학과

가까우며, 이를 보고 어떤 철학자들은 자연과학과 철학이 경쟁구도에 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이런 철학자들의 모든 공통점은 철학이 자연과학보다는 점증적으로 발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철학은

실험적 사실에 크게 의존하지 않았고 과학과 더불어 열려있는 질문을 통해 넓은 세상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렇기에 철학과 자연과학을 같은 맥락이라 보기는 조금 어렵습니다.   

 3) 수학

 수학은 학문 중에서도 매우 특성 있는 증명의 과정을 거칩니다. 철학은 보통 산문으로 표시되지만, 철학자가 

명확히 나타내려고 해도 수학이 나타내는 명확함에는 다다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철학자들은 철학적

소견에 동의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어도 수학자들이 수학적 소견에 동의하지 않는 사례는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수리철학은 과학에서 나온 한 분야이고 이런 중심에는 논리학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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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에는 다양한 하위분류가 존재하는데요. 

그중에서 고대부터 근대까지 끊임없는 전통을 가지고 있는 미술사학에 대하여 알아보겠습니다. 

 

 

1. 미술사학의 역사 

 미술은 인문학에서 뛰어나게 가지고 있는 전통, 예를 들어  고대의 이집트와 그리스, 중국과 로마, 메소포타미아 

메소아메리카, 인도 등과 같은 고대의 문명들 중 하나의 문학인 미술에서부터 기초를 지니고 있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미술은 인간이 가지고있는 신체적인 형태, 근육과 자세에 대한 숭배와 해부학적으로 정확하게 비례하는

것들을 보여주기 위하여 많은 기술들을 개발하고 또 고안해 왔습니다. 고대의 고마 미술은 인간이 이상화된 신들을 

묘사하였는데, 그 특유의 구별된 특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 가지 예로 제우스의 천둥번개를 들 수 있습니다. 

 교회가 지배하였던 중세시대의 고딕미술과 비잔틴 미술은 실체적인 가치로서의 귀환을 의미하였고, 이러한 것들의

전환은 인간이 신체의 풍경에 대해 삼차원적인 실제성을 보여주게되는 예술의 양식으로 반영되기도 했습니다.  

 동양의 미술은 일반적으로는 서양의 중세에 미술과 유사하게 작업되었습니다. 외면적으로는 무늬를 가지고 부분적인

색채와 농도를 가졌는데요. 이는 빛, 그림자, 반사 등에 일어나는 색채의 변주와는 다르게 붉은색 관복을 그리기 위해 

기본적으로 붉은색을 사용하고, 물체가 가지는 담백한 색채를 의미하는것을 말합니다. 이러한 것들은 티베트, 인도,

일본에서 보여주는 미술에서 뚜렷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종교적으로 이슬람의 미술은 도학상을 금지하였고, 기하학을 통하며 종교적으로 관념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으로 물리적, 합리적인 확실성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심리학을 통한 새로운 발견에 

의한 것 이외에 미증유의 기술적인 진보를 통해 산산이 깨진 19세기의 계몽주의에 따라 묘사되기도 했습니다. 

 이 시기에 증가하였던 세계적 교류들은 서양의 미술속에 또 다른 문화들에게도 동등하게 영향력을 주기도 했습니다.

 

 2. 미술사학 매체의 종류

  1) 그림

  여러가지 도구들과 기술을 사용하여 이미지를 만드는 것입니다. 일반적인 도구를 가지고 캔버스에 압력을 가하고 

표시하며 도구를 움직이는것들을 모두 포함하는데요. 여기에 쓰이는 도구들은 연필과 펜, 잉크, 크레용, 파스텔, 숯, 

색연필, 붓 등입니다. 이러한 것들과 유사한 효과를 내는 것으로 디지털 도구들도 사용됩니다. 

 그림에서는 다양한 기술이 사용되는데, 선 그리기와 교차해칭, 점화, 뒤섞기 등으로 분류되며 그림에 뛰어난 자질이

있는 사람을 화가라고 간주하고 있습니다. 

  2)회화

 회화란 용기 안에 담긴 안료와 또 다른 접착물을 종이나 캔버스, 벽등과 같은 면에 바르는 행동을 말합니다. 

예술적인 의미에서 볼 때는 표현하는 행위자의 의도를 나타내기 위하여 구도와 그림, 미적인 부분등을 고려하고 

행동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회화는 영적인 관념들을 표현하기 위해 주로 사용되는데요. 이러한 종류는 성당에 있는 

신화적인 인물을 묘사하는 부분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3) 색

 음악에서는 듣고 말하는 소리가 필수입니다. 그림체에서는 색이 필수적입니다. 색이란 보는 사람에 따라 굉장히 

객관적입니다. 하지만 상당한 심리적인 영향들이 색 아래에 놓아져 있기 때문에 , 문화의 관점에서 색에 따라 

파악하고 의미를 해석하는 것은 다를 수도 있습니다. 서양에서는 검은색이 애도의 뜻을 지닌다고 알고 있지만, 

다른 지역에서는 흰색이 애도의 색상일 수도 있습니다. 칸딘스키, 아이작뉴턴, 괴테를 포함하여 많은 화가, 작가, 이론가,

과학자들은 모두 각자 스스로의 색 이론을 써왔습니다. 

 언어를 사용하는 것은 색상과 같은 것에 대한 일반화라고 볼 수 있습니다. 빨간색이라는 단어를 보았을 때, 빨강의 

스펙트럼은 폭넓게 펼쳐져있기 때문입니다. 음악에서의 다조, 내림 다죠와 같이 모든 음들은 기준이 있습니다. 

 또한 색은 팬톤시스템의 목적으로 인쇄와 디자인등에 널리 사용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방식으로 인한 공식적인

정식화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근대의 화가들은 콜라주와 같은 부분을 예를 들어, 회화에 포함하고 있는 영역들을 크게 확장하기도 했습니다. 

 이 부분은 큐비즘과 함께 시작하였으며, 이것을 엄격하게 그림이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일부의 화가들은 회화적인

질감을 표현하기 위하여 밀짚과 시멘트, 모래 등과 같이 각기 다른 재료들도 넣어왔습니다. 이렇게 표현한 화가 들고 

장 두부펫, 안셀름키퍼를 예로 들 수 있습니다. 근대와 현대의 미술은 역사적인 기교를 넣은 것에 가치를 두었던

개념에 대하여 옹호하는 부분으로 이동하였습니다. 

그러나 이것 때문에 많은 화가들이 그들이 가지고 있는 작품에 부분적 혹은 전체적으로 적용하는 것을 꺼리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의 시각에서는 진정한 미술들의 형식은 그 안에서 회화는 죽었다는 말도 함께 전해지고 있습니다. 미술이란 사라질 수 없는 인문학의 한 종류라는 것은 변함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 안에서 회화나 색표현, 그림체 들이 

달라지고 있고 시대의 흐름을 반영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부분 때문에 고대의 미술 표현 화가들이

현시대에 더욱 각광받고 있다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미술을 표현함에 있어 많은 분들이 각자의 시각을 가진 것처럼 

그 모든 것들을 표현해 낼 수는 없기에 각자의 자리에서 섬세한 기술로 표현하는 기법 또한 화재가 되고 있습니다. 

 이처럼 시대의 변화에 따라 변화는 있지만, 사라질 수 없는 것이 인문학 가운데 미술사학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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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을 알아보며 가장 첫걸음으로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은 

철학이라고 생각됩니다. 

철학은 어떤것이 옳고 어떤 것이 그르다는 것을 판별하는 것인데요. 

삶에 대한 인간의 원리와 본질, 관심사 등을 탐구하고 이야기하는 

학문으로 다루어 집니다. 

인문학의 첫걸음으로 철학자 공자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인문학 철학자 공자 전반

 1) 공자의 생애 

   공자는 기원전 551년에 노나라의 취푸에 있는 시골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부친인 숙량흘은 아들은 없고 딸만 9명을 두었는데요, 그리하여 노년에 낳은 아들이 바로 

공자였던 것입니다. 공자의 어머니와 숙량흘은 정식적으로 혼인한 사이는 아니었습니다. 

숙량흘이 60대 후반이었을때 공자의 어머니인 안징재는 16세의 소녀였습니다. 

 2) 공자의 유년기

 공자는 사생아로 태여났기에, 공 씨 가문에서 부친 숙량흘의 자손으로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그리하여 부친의 재산은 이복형제들에게 상속되었지요. 공자의 모친인 안징재는 눈이 멀어버리는 

병에 걸려 형편이 어려워졌고, 공자는 천한 일들을 하며 어려운 유년기를 보냈습니다. 

 

2. 인문학 철학자 공자의 후반 

 관료생활을 하던 공자는 말년에 고향쪽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후배들을 양성하는데 힘을 쏟았는데요. 공자는 오래된 중국의 경전을 제자들에게 

가르치고 애정을 쏟았습니다. 하지만 아들의 죽음과 아끼던 제자들의 잇따른 죽음에 비통함을 

감추지 못했는데요. 아들이 죽고 나서 남은 손자를 공자가 키우게 되었습니다. 공자의 손자는 

조부의 사상을 이어나가게 되었습니다. 

 1)공자의 제자들

 공자의 많은 제자들 중 남궁도, 자유, 자궁 염백우 등 많은 선비들이 있습니다. 

 2)공자의 말년 

 공자는 기원전 479년에 7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공자가 떠난 후 제자들은 스승의 

뜻을 받을어 유명한 논어를 저술했습니다. 

 

3. 공자의 사후

 공자의 별세 후 장례가 치러졌습니다. 그의 제자들은 부모와 준하는 상복을 입고 

 3년상까지 치르게 되었습니다. 또한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고향에서 애썼습니다. 

 공자의 손자인 자사의 후손들, 그리고 자사의 학파에서 갈려 나오게 된 맹자의 학파들, 

순자의 학파들까지 모두 크게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맹자의 성선설과 순자의 성악설이 크게 자리 잡게 되었는데요, 맹자는 인간의 본성은 착하다는 

학설을 중심으로 내세웠고 순자는 인간의 본성은 악하기에 본성을 다스려야 한다는 성악설로 

크게 유명해지게 되었습니다. 

  명나라가 건국된 후에는 지성선사라는 별칭을 받기도 했습니다. 

 

4. 공자의 사상 

1) 논어 

 논어는 공자가 그의 제자들과 문답형식으로 나눈 언행집입니다. 인간이 가져야 할 행동의 지향점은 

"인"에 있다는 말을 핵심으로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선과 지덕의 뜻이 담긴 인도주의, 명분을 바르게 하며 신하는 신하답게 임금은 임금답게 

부모와 자식도 제 자리에서 본분을 유지하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인간의 본질은 보통 소인과 범인, 악인으로 구분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는데요. 그리하여 제자를 

교육할 때 각인의 이해정도와 능력에 따라 적절한 방법을 사용하고 성품을 개발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그의 명언 가운데 "소인은 끼리끼리 하며 두루두루 소통하지 않고, 군자는 두루두루 소통하나 끼리끼리

하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2) 정치관

 공자는 군자 양성에 힘썼습니다. 군자는 사회와 국가를 끌어갈 지도층의 인사이며 인격의 완성체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군자라는 말은 본디 정치에 참여할 만한 능력과 자질이 있는 귀족계층을 이야기하였으나 

군자는 그러한 지위에 국한하지 않고 지위에 어울릴만한 인격과 교양을 지닌 사람으로 확대하여 

다양한 인재를 양성하려고 힘썼습니다. 

 

 

5. 공자의 공파 

 

  유교사상의 정통학파인 증서, 자사를 계승하였습니다. 맹자는 이를 계승해 학파를 형성하였습니다. 

 자궁은 공자의 또 다른 제자 중의 한 명이었는데, 이 학파에서 순자가 나왔습니다. 

 자궁과 순자 계통의 학파에서는 상앙, 이사 등으로 발전하였습니다. 

  공자의 곡부공 씨는 공자의 이전에도 선조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가문을 본격적으로 일으키게 된 

공자를 시조로 간주하고 있습니다. 

 또한 한국의 공씨는 공자의 후손인 공소를 시조로 하고 있습니다. 공소는 원나라시절에  

고려로 건너온 인물입니다. 원나라가 멸망의 조짐이 보이면서 고려로 넘어왔고, 한국에 있는 공 씨들의 

선조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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