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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문학을 공부하다 보면 수양론에 대해서 배울 수가 있습니다. 수양론이란 무엇인가?? 논어에서 옹야편을 

보다 보면 배움에 관련된 이야기가 나옵니다.  공부를 많이 하게 되면 노여움이 밖으로 드러나지 않고, 

실수도 두 번 이상 반복하지는 않게 된다는 뜻입니다. 옹야 편에서 뿐 아니라 유가를 알게 되는 배움에서 볼 때 

공부에 대하여 설명하기보다, 공부를 많이 하게 된 사람이 결과적으로 갖추게 된 성품을 보는 것입니다. 

 이것을 반대로 생각해 보면 보통의 사람들도 노여움을 감추고 실수를 계속하지 않는다면 공부를 많이 한 것으로 

될 수 있다는 것인데요. 공부와 수양이 동일시된다라는 태도라고 보입니다. 

  1. 수양론의 극치

 수양론은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는 말에서 비롯됩니다. 치국평천하를 하고 싶다면 먼저 수신제가해야 하고 

수직적으로 논리를 보이는 것이 큰 문제인데요. 이런 방식이 보여주는 수양론은 통치적 논리가 우선시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개개인이 수양이 부족하거나, 집안도 다스리지 못하면 사회적 업무도 엉망이 되고 

나랏일도 잘 되지 않는 것이죠. 그렇기에 통치가 기반이 되는 수직방식의 수양론은 자기가 하는 권력에 대하여 

비판을 하지 않으려는 사회적 최면제에 구실을 다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논리는 과거에 독재정권에서 대항하는 

세력을 차단하려는 전술로 많이 사용했었는데요, 현재까지도 정치권에서는 많이 행하는 방식이기도 합니다. 

 이제는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는 것이 수직적인 논리가 아니라 수신과 젠가를 함께 하고, 또 치국과 평천하 

하게 되는 수평적인 논리라는 것을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보다는 상대적이지만 우리들이 무의식 중에 수평적인 이해로 다가가고 있다는 것을 

주목해야 할 것입니다. 

 

  2. 격물치지성의정심


  수신제가치국평천하가 통치와 관련된 공부라고 한다면 격물치지성의정 심은 수양과 관련된 공부라고 
생각하는 이가 많습니다. 하지만 사실 이 두 가지 부류는 하나의 공부로 통합되고 있습니다. 
격물치지가 말하는 대상이 과거에는 사회, 인간이었다고 한다면 현재는 사회와 인간은 당연하고

자연과 형식논리, 심리 등이 모두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서구에서 말하는 학문의 범위는 결국에는 동양고전에는 따로 없었던 심리과학, 자연과학, 수학

으로 크게 학문이 나누어지면서 학문은 깊어지고 세분화되었습니다.  
하지만 학문의 분야가 확장되면서 학문의 수양론은 폐기되게 됩니다. 이때 학문이 권력화되고
공부를 왜 하게 되는가에 대한 질문들이 사라져 갔습니다. 가치의 중립성이라는 기준들이 생겨나면서 
새롭게 자리 잡게 된 것입니다.  


  3. 동양철학의 출발


 동양철학이 자리잡게 된 즈음, 그 출발은 실천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실천의 과제로 어떤 때에는 
실용주의, 어떤 때는 정권이 유지되는 이데올로기. 어떤 때에는 물가와 유가의 논쟁 같은 사랑이 하는
차별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하지만 분명 하나 것은 그때 당시의 역사적인 소명의 의식들이 포함되었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이런 부분들이 서구에서 시작된 근대화의 시점에서 이데올로기의 역할보다는 
소극적으로 나타났으며, 자기 보호의 학문이론으로 진전되었다는 것이 우리의 역사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 실천에 대하여 메타실천의 이론으로 발전되었다는 것입니다. 80년대부터는 소장학자를 
중심으로 현실에 대한 문제들을 고민하였고 이때 동양의 철학자들이 많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군자가 말하는 논리를 무조건 따르자는 의견부터, 우리가 모두 실천하는 철학으로 나뉘어서 확산되었습니다. 
동양의 철학은 군자들의 이야기들을 많이 따르는데 사실 군자들의 수양법은 평범한 사람들이 따라가기에는 
너무 멀고 힘들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 길을 끝까지 따른다고 하여도 혼자 수양을 완성하고 치국평천하를 
이루기는 좀 벅차며 이런 것이 군자의 논리와는 조금 거리가 있습니다. 이런 동양의 철학들은 현시대의
실천론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며 실천에 대한 좋은 글들이 가끔은 또 하나의 이론이라는 의견들도 
보이고 있습니다. 


 4. 수양을 위한 실천


 수양의 위해서 결국 공부하고 실천하는 것이 과제입니다. 요즈음의 철학은 많은 이들에게

각광받지는 않습니다. 
 철학의 의미, 구실을 질문하는 것이 현대의 산업사회에 들어와 점점 더 앙상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첨단과학이 발전하고 자본주의시대가 되면서 우리 삶도 많이 변화되었습니다. 매일매일 다르게 변하는 
시대 속에서 철학만을 따라가는 것이 가끔은 어렵기도 합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이제는

철학에 대한 새로운틀을 만들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이런 부분들이 철학을 공부하는 데 있어 꽤 중요한 과제가 되었습니다. 
철학은 사실 이데올로기 시대보다도 더 할 일이 많아진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실천을 하지 않는 철학은 그저 박제되어 있는 철학일 뿐입니다. 
 철학에 대해 학문의 밑받침, 도의 기반으로 여기고 본인의 속마음에 대해 단장하며 행실도 살피는 동시에 마음을 
반성한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미 아는 것이 있다 하여도 그것을 바탕으로 깊이 철학을 연구하고 내가 알고 있다
하여 자만하지 않고 학문을 멈추지 말라는 것입니다. 또한 옳은 일들은 반드시 실천하려 노력하고 어려울 때는 
힘을 모아 해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철학에 대한 공부는 진정한 실천이며 그 길로 가기 위하여 치지 와 존양,
성찰의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철학은 현시대에도 큰 과제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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