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중국의 대표적인 철학자로 공자를 들 수 있습니다. 공자의 인망에 대해 해가 더해갈수록 높아졌다는 평이

있습니다. 큰 벼슬도 하게 되었으며 이 시대에까지 덕망 받고 있던 공자의 정치활동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1. 수장 공자

 공자는 공직생활 시 순장이 될 뻔했던 아이를 구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 일을 계기로 계속 이어져 내려오던

순장이라는 풍습이 악하다는 것을 왕에게 고하였고, 결국 폐하게 됩니다. 또한 제나라의 경공과 회동하였고, 

공자의 뛰어난 전략으로 협상을 끌어냈습니다. 어떠한 전쟁 한번 없는 결과였습니다. 이 협상으로 노나라가 예전

잃게 되었던 옛 땅을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그 당시에 권세가 높았던 삼환 씨에 대해 횡포를 찾아내고, 

이를 꺾기 위해 그들이 머무는 삼성을 없애는 계획도 추진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러한 일들은 계손사의 귀에 

들어가게 되고, 결국 도중에 중단되고 맙니다. 맹손과 숙손, 삼환 등을 이끄는 수장이었던 계손사의 경비를 

뚫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2. 반란

 이 시기에 공산불뉴는 계손사와 삼환이 저지르는 횡포에 맞서기 위해 반란을 일으키게 됩니다. 공자 또한 

삼환의 무리들을 몰아내고 싶어 했고, 이로 인해 노나라를 바로 세우고 싶어 했습니다. 이런 목표로 공자는

이미 일을 추진했었고, 도덕정치의 구현에 대한 강한 열망으로 여러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노나라에서 공자의 제자였던 남궁도와 맹의자 등이 이를 만류하였고, 여러 가지 상황 또한 벌어지게 되어

공자는 단념하게 됩니다. 

 공자는 국정을 굳건히 하기 위해 권세를 계속 가지고 있던 계손사를 몰아내려고 했습니다. 이런 목표로 

여러 가지 일을 도모하였으나, 성사직전에 매번 실패하게 됩니다. 이러한 일들로 계손사의 눈밖에 나게 되고 

미움받게 됩니다. 결국 공자는 기원전인 496년도에 노나라를 떠날 수밖에 없었고, 여러 병의 제자들과 

본인의 학문적인 기량을 현실적으로 실행할 수 있는 군주를 찾기 위해 정처 없는 여정에 나서게 됩니다.   

 3. 도덕정치

 공자의 여정은 10여 넘이 넘게 계속되었습니다. 이 기간 동안 성인이었던 공자에게도 무척이나 견디기 힘든 

어려운 세월이었다 전해집니다. 이 여정동안 생명에 위협이 생기는 어려움을 겪기도 했고, 이런 어려움으로 

여행을 하며 만났던 은자들에게 조롱과 무시를 당하기도 합니다. 

 공자가 주장했던 도덕정치는 이동하며 머물렀던 모든 나라에서 외면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당시의 왕은 

올바르게 가는 길보다는 쉬운 길을 택해 국력을 키우기를 바랐고, 천하를 헤울 부국강병만이 오롯한 목표

였기 때문입니다. 

  이런 열악한 상황 속에 공자는 결국 자신이 택했던 학문적인 이상이 현실적인 정치상황에 실현되기는 

어렵겠다는 것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렇게 공자는 귀국하게 되고, 후학의 양성에만 힘쓰기로 마음먹게 

됩니다. 이런 상황으로 공자의 정치적인 삶은 결국 마감하게 되고, 후배를 양성하는 교육자로서의

2막이 펼쳐지게 됩니다.  

 4. 정치관

 공자는 정치관에 대해 목표로 삼은 것이 있었는데요. 사회와 국가를 함께 끌고 갈 지도자창의 인사로 

완벽한 인성을 가진 군자들을 양성하는 것이었습니다. 군자는 원래는 귀족을 뜻하는 말이었습니다. 

 그 당시 귀족은 한 나라에서 정치에 참여하게 되는 능력이나 자질을 겸비한 인물을 뜻했는데요. 

 공자는 이런 지위에 어울릴만한 사람을 찾고, 도덕적으로 인격이 있는지 인문적인 묘약을 가지고 있는지 

여러 분야로 뜻을 확대하여 인재육성에 힘을 쏟았습니다. 

 군자를 양상 하겠다는 목표를 세운 경자는 춘추시대 전에 민요와 가요 등을 편집했던 서적등을 통해서 

교범으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이때 노나라의 역사서적인 춘추를 편찬하였고 역사의 산증인으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5. 관료생활

 공자는 회계의 출납직 위리를 거쳤고, 목장의 경영직 사직을 통해 관료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30세가 된

공자는 관리로서 인정받게 되었고, 지위도 얻었습니다. 또한 학문적으로 많이 성장하였습니다. 

 공자의 정치관으로는 법보다는 덕으로 나라와 백성들을 다스리는 것이 맞다고 하는 것이고, 세상의 일들을 

처리할 때 사람을 우선으로 중시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을 인본주의라고 하는데, 주공이 나라를 

다스릴 때 그 시대처럼 평화롭고, 올바른 세상을 만들어가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공자의 본국인 주나라에서 낙읍으로 돌아본 후 귀국한 공자는 각국으로 명망이 높아졌습니다. 그러면서 

그에게 배우고자 하는 제자들이 점차 늘어났고, 그 수는 점점 늘어 3천 명이 넘었다고 전해집니다. 

 공자를 눈여겨보았던 노나라 왕 소공이 그를 가까이 두려 애썼다고 합니다. 

 공자가 35세가 되던 때에 노나라의 권세가였던 삼환이 일으키는 난이 일어났습니다. 노 와의 소공은 

신하에게 쫓겨 제나라로 도망쳤습니다. 공자 역시 그의 뒤를 따랐고 제나라로 이동합니다. 

 공자는 제나라에서 여러 가지 진리를 가르치게 됩니다.  공자의 인품을 보고 경공은 공자를 흠모하게 

되었고, 곁에 두고 했습니다. 하지만 공자 때문에 위치가 위태로워질까 걱정했던 제나라의 제상의 반대로 

무산되게 됩니다. 

 공자는 이런 일을 사유로 2년 후 귀국하게 됩니다.  이후 제나라는 노나랑 밀차를 파견하였고, 공자는 이를 

알아채 미리 화를 막았습니다. 하지만 삼환 씨의 세력은 꺽지 못했고, 여러 가지 연유로 크게 낙담하게 됩니다. 

 그 후 공자는 벼슬을 버렸고, 이후 14년 동안 제자들과 여러 나라를 주유하며 지냈습니다.  

반응형

+ Recent posts